러 안보위협규 美 방위비 증액 압박에 군비 지출 가파르게 늘려
징병제 부활도 논의…주력 車산업 설비는 방산 시설로 주목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미국의 유럽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 등으로 독일의 재무장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군비 지출 확대는 이제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게는 과거와 달리 호재로 여겨지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일(현지시간) '독일이 유럽을 또 변화시키기 위해 무장하고 있다'라는 기사에서 최근 독일 재무장의 추이와 의미를 분석했다.
독일은 작년 무기 구입에 500억 유로(약 82조원)를 쏟아부은 데 이어 3천770유로(약 621조원)를 추가 지출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2011년 폐지한 징병제를 부활하는 병역제도 개편도 논의 중이다. 현재 18만2천명인 연방군 병력을 2035년 26만명으로 늘린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국방비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 벨트'도 이미 넉넉하게 풀어뒀다.
독일은 지난 3월 기본법(헌법)을 개정해 국방비에 부채한도 예외를 적용하고 사실상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1%였던 국방예산이 최근 나토가 추진하는 대로 GDP의 5%까지 늘어날 수 있게 됐다.
독일의 국방비 확장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나토 방위비 증액 요구도 독일의 재무장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왜 우리가 유럽보다 수십억 달러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며 유럽에 국방비 증액을 압박해왔다.
독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국방 지출을 줄여왔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가 패전국이 된 나치 독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국방 지출 감액을 가속하는 촉매가 됐다.

1990년 2.5% 수준이었던 독일 국방 지출 비중은 10년 만에 1.4%로 떨어졌다. 결국 1992~2013년 사이 전차 보유량은 6천684대에서 323대로, 보병 전투차량은 3천250대에서 395대로 쪼그라들었다.
2014년 독일군의 이른바 '빗자루 소총' 논란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당시 나토 훈련에서 독일 연방군은 장비 부족을 숨기려고 빗자루에 검은 페인트를 칠해 소총인 척하다가 발각돼 망신을 샀다.
최근 독일의 재무장은 과거 군국주의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독일의 군비 지출 확대는 방위산업 투자로 이어지면서 최근 불황을 겪는 독일의 주력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기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인력 축소와 공장 폐쇄 등이 검토되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생산 설비가 방산 시설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독일의 자동차 생산량은 최근 10년간 25%나 줄면서 340만대 수준에 그쳤다.
독일의 재무장은 다른 EU 국가들에도 호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러시아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와 밀착하는 등 오랜 안보동맹인 미국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상황에서 EU 국가들은 유럽의 전통적 강대국인 독일의 '전쟁 억지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U는 자체 국방력 강화를 위해 최소 8천억 유로(약 1천229조원)의 자금을 동원하는 일명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추진 중이다.
텔레그래프는 "힘을 갖춘 독일은 대부분 동맹국에게 대단히 환영받을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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