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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반군·정치인…결국 유엔총회 입성한 시리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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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반군·정치인…결국 유엔총회 입성한 시리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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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리스트·반군·정치인…결국 유엔총회 입성한 시리아 대통령
    한때 미국 철창신세…'학살자' 아사드 정권 타도 후 친서방
    "교활함과 외교력, 무자비함을 두른 지적이고 야심찬 변신술사"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아메드 알샤라(42) 시리아 임시 대통령은 여러 얼굴의 지도자다.
    극단적인 테러리스트, 체제 전복을 꿈꿨던 반군 지도자였던 그는 이제 온건한 정치가의 가면을 쓰고 이번 주 유엔 총회 연설로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한다. 시리아 원수가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1967년 이후 58년 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그가 국가 지도자로 부상한 과정을 지켜보거나 그와 교류했던 70명 이상을 인터뷰해 알샤라 대통령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NYT가 정의한 알샤라 대통령은 교활함, 매력, 외교력, 무자비함을 갖춘 인물이자 자신의 사상과 신념까지도 자유자재로 바꾼 지적이고 야심 찬 '변신가'다. 그의 다양한 변신은 중동의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고 이 매체는 설명했다.
    알샤라는 198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산층 시리아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경제학자, 어머니는 교사였다. 그의 가족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웃 마야 아템은 알샤라가 책을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았다면서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고 떠올렸다.
    아템은 "갑자기 사라졌다"며 "심지어 그의 어머니도 그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몰랐다"고 전했다.
    그가 다시 등장한 곳은 2003년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였다. 그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에 합류했고, 2005년 미군에 체포돼 6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그와 함께 수감됐던 이라크 부족 지도자 무자힘 알후와이트는 알샤라가 '암자드 무다파르'라는 가명을 사용해 자신을 이라크 학생이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이라크 억양이 워낙 자연스러웠기에 그가 실제로는 시리아인이라는 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후와이트는 NYT에 "나와 함께 감옥에 있었던 그가 시리아의 대통령이라니"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알샤라는 시리아로 잠입해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누스라 전선'을 창설했다. '아부 모하메드 알줄라니'라는 가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알샤라는 2012년 초 시리아 주요 도시에서 잔혹한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하며 누스라 전선의 세력을 키웠다.
    누스라 전선은 기독교인들의 십자가와 교회 종소리를 금지하고, 비판자들을 살해·구금하는 등 극단적인 통치를 펼쳤다. 당시 누스라 전선에 납치됐던 가톨릭 신부 한나 잘루프는 "그들은 모든 것을 가져갔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알샤라는 점차 극단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슬람 성직자들을 통해 잘루프 신부에게 화해를 청했고, 압수했던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잘루프 신부는 "이 남자(알샤라)는 신뢰할 수 있다. 약속을 지킨다"고 말했다.
    알샤라는 2013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이끌던 아부 바쿠르 알 바그다디가 악명 높은 이슬람국가(IS)를 창설했을 때도 이와 거리를 둔 채 시리아에서 별도의 투쟁을 이어가다가 2016년 7월 알카에다와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이후 시리아 북부의 4개 반군 조직을 통합하며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을 설립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튀르키예의 역할이 있었다고 NTY는 전했다. 시리아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튀르키예는 알샤라를 가장 유능한 파트너로 판단하고, 그에게 극단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알샤라는 점차 극단주의자들을 억제하는 데 자신의 힘을 사용했고, 서방 정부들과의 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 주시리아 미국 대사 로버트 S. 포드는 2023년 시리아에서 알샤라를 만났다. 알샤라는 그에게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시리아를 통치하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포드 전 대사는 당시 이를 허황한 꿈이라고 여겼지만 지난해 12월 알샤라는 실제로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군복을 양복과 넥타이로 바꾸고 가명 대신 본명으로 바꾼 알샤라는 이제 시리아 지도자로는 58년 만에 처음으로 유엔 총회 연단에 선다.
    포드 전 대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알샤라가 실용적으로 보이려는 강경 이슬람 지하디스트라기보다는 안정적인 정부를 세우려는 권력 추구형 권위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알샤라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제재 해제를 끌어냈고, 이스라엘과도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종파 간 폭력 사태는 과연 그의 변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불안감을 안긴다고 NYT는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알사랴는 이라크 정치인 에자트 알샤반다르에게 "내가 있는 이 궁전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털어놓으며 정부 내 강경파를 통제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임을 인정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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