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서 릴레이 면접…당일 합격도" 마이크론, 韓 'HBM 인재' 수혈 총력
한국 엔지니어에 전방위 이직 제안…HBM 경쟁력 확대·실적 개선 전략
국내 업체 '인력 유출' 비상
(서울=연합뉴스) 강태우 기자 = 글로벌 3위 메모리반도체 기업 미국 마이크론이 업종과 경력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 엔지니어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범용 D램 제품으로 인한 실적 부진이 예상되는 만큼 경쟁사 인력까지 끌어와 인공지능(AI) 필수 반도체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최근 몇 주간 경기도 판교 일대 호텔 등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경력 면접을 잇달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을 찾은 마이크론 대만 매니저와 지원자가 1:1 방식으로 영어, 피티(PT) 면접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면접은 대만 타이중 지역의 팹(공장)에서 일할 인력 채용을 위한 것으로, 대만 공장은 최대 D램 생산기지다. 마이크론의 HBM도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실제 면접을 본 한 반도체 업체 직원은 "서류를 내고 한 일주일 만에 면접 연락을 받았다"며 "면접 장소(호텔)에는 여러 미팅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지원자들이 나눠서 면접을 봤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영어로 면접이 진행됐으며 30분 정도 걸렸다"며 "주로 직무와 자소서 기반 질문이 많았고, 준비해 온 피티 발표도 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달 초중순에도 마이크론은 국내 주요 대학에서 '당일 채용(사전 지원자 대상)'이라는 파격 조건까지 걸고 채용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노골적인 인재 뽑기를 시작했다.
아울러 이번에 뽑는 경력직 직무와 근무지로 볼 때, 전사 역량을 HBM에 집중시키겠다는 의지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킹 플랫폼 '링크드인'을 통해 대만 헤드헌터가 한국 엔지니어들에게 제안(오퍼)한 포지션의 '직무기술서(JD)'에도 HBM과 패키징 내용이 다수였다.
오퍼 조건으로는 연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원천징수 기준 10∼20% 임금 인상, 거주비 및 비자 프로세스 지원 등을 내걸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엔지니어뿐 아니라 한국에 지사를 둔 외국계 반도체 장비업체, 디스플레이 업계 직원들에게도 이직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차도 주니어부터 팀장급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빠르면 당일 또는 1∼2일 만에 합격 통보를 받거나 대만이 아닌 미국, 싱가포르 팹 근무를 제안받은 지원자도 있었다.
이 같은 마이크론의 행보는 D램에서 우위에 있는 한국 업체들의 엔지니어를 통해 HBM 경쟁력을 확보하고 실적 반등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에 이어 두 번째로 'AI 큰손' 엔비디아에 HBM3E(5세대) 8단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12단 제품은 샘플링 중이며 HBM4(6세대) 제품 양산도 2년 내 이루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다만 마이크론이 4세대 제품인 HBM3 양산을 건너뛰고 HBM3E에 발을 들인 만큼, 후속 제품 개발과 공급 물량 확대 등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역량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시장 주류인 HBM3E 12단 제품을 사실상 전량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고, 내년 상반기 중 HBM3E 16단 공급, 내년 하반기 HBM4 12단 출시도 예정돼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HBM 시장 점유율에서도 마이크론은 9%로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등에 이어 3위로 '메모리 3강' 가운데 가장 낮다.
여기에 실적 눈높이까지 낮아지면서 다급해진 마이크론으로써는 외부 인력들까지 적극 채용하며, 그나마 견조한 실적을 내는 HBM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앞서 지난 19일 발표된 마이크론의 2025 회계연도 2분기(12∼2월) 매출(79억달러)은 월가 전망치(89억9천만달러)를 10% 이상 밑돌고, 주당 순이익(1.53달러)은 전망치(1.92달러)보다 약 25%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회계연도 1분기(9∼11월)에 HBM은 전분기 대비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실적에 기여하고 있다"며 "HBM은 내년에도 여전히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2025 회계연도의 자본 투자의 대다수는 HBM, 시설, 연구개발(R&D) 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이러한 마이크론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대규모 인력 유출 우려와 이로 인한 HBM 경쟁력 저하 등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나 이미 마이크론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다만 회사 고위급의 핵심 인력을 제외하고는 이직이나 면접을 보는 개별 인원을 모두 관리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지키기 위해 기업 문화를 개선하거나 PS, PI와 같은 성과급, 특별 격려금 등을 확대 지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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