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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 모범생' 마카오, 中 반환 25주년 맞아 더 도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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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 모범생' 마카오, 中 반환 25주년 맞아 더 도약할까
中 지원 속 성장한 '카지노 도시'…저항 잇따른 홍콩과 달리 '中에 우호적' 평가
시진핑 방문에 관영매체들 분위기 띄우기…"방랑하던 마카오, 조국 품에서 번영"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과거 마카오는 산전수전을 겪고 고향에 돌아가기를 고대하는 방랑자였다. 25년 전, 방랑자는 조국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고 마카오는 날마다 새로운 '호우공(濠江·마카오의 다른 이름)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카오 반환' 25주년을 맞아 18∼20일 마카오를 방문하는 가운데, 관영 신화통신은 17일 마카오의 '중국화' 성과를 담은 6천여자 분량 장편 기사 '태평성세 호우공 새로운 이야기'를 게재했다.
이에 질세라 관영 중국중앙TV(CCTV)는 5부작 다큐멘터리 '스물다섯 해 연꽃(마카오를 상징하는 꽃)의 정'을 편성·방영했다.
'국가의 정', '다원화의 길', '행복의 맛', '융합의 도시', '미래의 문' 등 다섯 편으로 이뤄진 이 다큐멘터리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성공적인 실천'을 다룬다.
오는 20일이면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마카오가 1999년 12월 20일 중국으로 반환된 지 25년이 된다. 400년 넘게 유럽의 식민지로 중국의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했던 마카오는 이제 중국 일국양제의 '모범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포르투갈 400년 지배하다 1999년 中에 반환

마카오는 중국 광둥성 남부 주장(珠江)삼각주 서쪽에 있다. 홍콩에서 직선거리로 약 60㎞ 서쪽,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에서는 남쪽으로 약 145㎞ 떨어진 곳이다.
광둥성 주하이와 이어진 마카오 반도(중국 대륙)와 남쪽의 타이파섬, 콜로안섬 등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면적은 약 33㎢로 서울의 18분의 1 정도다.
포르투갈로부터 반환 전 43만명이던 마카오 인구는 중국 본토 인구 유입에 힘입어 올해 기준 71만명까지 늘었다.
면적과 인구 모두 홍콩(약 2천755㎢·750만명)에 크게 못 미치지만 중국에서는 홍콩과 함께 양대 특별행정구로 분류되고, 대만까지 합쳐 '외국이 아닌 해외 지역'인 '강아오타이'(港澳台·홍콩, 마카오, 대만)로 통칭된다.
마카오의 역사는 1542년 명나라가 '대항해 시대'를 맞아 동진하던 포르투갈과 무역하기 위해 개항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포르투갈은 1557년 명나라로부터 마카오반도를 특별거주지역으로 조차한 뒤 아시아 무역 전진기지로 개발했고, 이곳을 통해 기독교와 서양 문명을 동양에 전파했다. 포르투갈은 1887년 중국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 마카오를 영구 할양받은 데 이어 1951년에는 해외령으로 정식 편입했다.
반(半)식민 상태를 벗어나 1949년 중국 대륙에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은 1955년 포르투갈에 마카오 영토·주권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문화대혁명이 발발한 1966년에는 중국계 주민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마카오 정치에서 친중파 진영 입김이 거세졌다.
포르투갈은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뒤 1986년부터 마카오의 장래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고, 이듬해 마카오 반환에 합의했다. 12년이 지난 1999년 12월 20일 마카오 주권은 중국으로 반환된다. 영국으로부터의 홍콩 반환(1997년) 두 해 뒤다.



◇ 반환 후 '카지노 메카' 떠오르며 GDP 7배 상승…中 의존도 커

마카오가 중국 반환 후 눈에 띄는 경제적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세계은행(WB) 데이터를 보면 주권이 반환된 1999년 마카오 국내총생산(GDP)은 65억달러(약 9조3천억원)였는데 작년에는 470억달러(약 67조5천억원)로 7배 넘게 늘었다. 이마저도 552억달러(약 79조3천억원)로 정점을 찍은 2018년에 비하면 다소 줄어든 규모다.
영국령 시절부터 금융 허브 역할을 한 홍콩의 경우 1997년 1천774억달러(약 255조원)였던 GDP가 지난해 3천821억달러(약 549조2천억원)로 2배가량 커진 것과 비교하면 마카오가 입은 '수혜'는 괄목할 만하다.
마카오의 성장은 마카오 경제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카지노 산업이 주도했다.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을 합법화한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카지노를 즐기려는 중국 본토인들이 대거 몰리면서 마카오는 200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1위 카지노 도시가 됐다.
코로나 대유행에 중국 당국의 카지노 단속으로 도박 산업 전반이 타격을 입은 2022년 한때 4.3%까지 치솟기도 한 마카오의 실업률이 중국인 카지노 관광객 행렬이 회복되면서 올해 들어 다시 1.7%의 '완전 고용' 수준으로 떨어진 점이 보여주듯 카지노는 마카오 경제를 좌우하는 산업이다. 카지노 수입은 마카오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정부 보조금의 원천이기도 하다.
중국 의존도가 큰 만큼 마카오의 사회 분위기는 이따금 반(反)중국 정서를 표출해온 홍콩과는 판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홍콩에서는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국가보안법 입법이 마카오에서는 별다른 마찰 없이 순조롭게 이뤄진 게 대표적이다. 2014년 '우산 혁명'이나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등 홍콩에서 잇따랐던 대중운동도 마카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 홍콩과 다른 '일국양제 모범생'…中, 시진핑 방문 계기 '선물 보따리' 줄까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은 뒤 '일국양제' 모델을 채택해 50년간의 자치적 정치·사법 시스템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덕분에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이 독자 행정권을 행사하고, 국회 격인 입법회와 법원도 존재한다.
중국 중앙정부는 이 '3권'에 친중 세력의 비중을 꾸준히 늘려 두 지역의 점진적인 '중국화'를 유도해왔다.
올해 10월에는 제6대 마카오특별행정구 행정장관에 첫 본토 태생 장관인 삼호우파이 전 마카오 종심법원장이 유일한 후보로 출마해 선출됐다. 그는 마카오종심법원이 2021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추모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판단했을 당시 법원을 지휘했고, 같은 해 동료 판사들과 함께 마카오 민주 인사 21명의 입법회 선거 출마 금지를 승인하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삼 장관의 당선 일성은 "기본법(마카오기본법) 규정에 따라 행정장관은 (중국) 중앙인민정부에 책임을 지고 마카오특별행정구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일국양제 방침의 정확하고 흔들림 없는 관철을 기본 지침으로, 국가 주권·안보·발전 이익 수호를 최고 원칙으로, 경제의 적절하고 다원적인 발전 가속화와 (중국) 국가 발전 대국(大局·큰 구도)에의 융합을 사명으로 삼을 것"이었다.
홍콩과 달리 중국 본토에 눈에 띄는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마카오는 '일국양제 모범생'이 됐고, 중국은 마카오 반환 20주년이던 2019년 시 주석의 마카오 방문에 맞춰 마카오 은행들의 본토 금융기관 설립 허용 등을 포함한 '선물 보따리'를 주며 화답했다.
반환 25주년을 맞아 시 주석이 재차 마카오를 찾는 만큼, 중국 중앙정부가 마카오에 또 다른 선물을 내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헌법과 마카오기본법은 헌정 질서를 다졌고, 경제의 빠른 발전과 민생의 지속적 개선, 사회의 조화로운 안정을 이뤘다"며 "앞으로 우리는 중앙정부와 조국 본토의 힘 있는 지원 아래, 마카오특별행정구와 사회 각계의 공동 노력 하에 마카오가 일국양제의 성공적 실천이라는 화려한 장(章)을 써나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xi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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