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폭로 후 자진귀국 시리아 활동가, 시신으로 발견
'인간 도살장' 세드니야 교도소 해방 직전 살해 추정
행동하지 않는 세계의 비정한 무관심에 실의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잔혹한 고문을 폭로했으나 세계가 행동에 나서지 않아 실의에 빠진 끝에 몇 년 전 네덜란드에서 시리아로 귀국했던 활동가 마젠 알하마다(47)가 옥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시리아 반군에 의해 해방된 다마스쿠스 교외의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시설 세드나야 교도소내 시신보관소에서는 전날 하마다를 포함, 4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 상태로 보아 하마다는 시리아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세드니야 교도소 수감자들을 석방하기 직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도소는 국제앰네스티의 표현에 따르면 늘 수천 명이 고문당하고 성폭행당하다 살해당하는 "인간 도살장"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혹시나 하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으나 그런 기적은 없었다.
프랑스계 석유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하마다는 2011년 시작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으며 아사드의 보안군에 포위된 마을에 분유를 몰래 가져다주려다가 2년 넘게 투옥돼 잔혹한 구타와 성폭행 등 고문을 당했다.
그의 친구인 사진작가 사키르 카데르는 마젠이 당한 고문이 너무나도 잔혹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마치 딴 세상 얘기 같았다며 "그가 말할 때는 마치 죽음 자체를 응시하면서 죽음의 천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마다는 아사드 정권의 잔혹성을 세계에 알린 가장 유명한 증인 중 하나였다.
가디언은 그에 대해 "움푹 팬 눈과 귀신에 쫓기는 듯한 표정, 그리고 그가 겪은 깊은 공포를 묘사하면서 흘리는 눈물로 하마다는 아사드 정권이 반대자들에게 저지른 범죄의 상징이 됐다"고 평가했다.
시리아인권네트워크(SNHR)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이 고문으로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사망자의 수는 2011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만5천102명으로 집계됐다.
실종돼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10만명이 넘으며, SNHR에 따르면 거의 모두가 고문받다 숨지는 등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다는 2년간 고문을 당하다가 석방된 후 2014년 네덜란드로 탈출해 망명 허가를 받고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고문을 폭로하고 알아사드 정권의 잔학성을 고발했다.
'시리아의 실종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울면서 "법으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들을 법정에 세우고 정의를 세울 때까지 쉬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는 알아사드 정권을 막기 위한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았고, 그런 비정한 무관심에 직면한 하마다는 점점 실의에 빠졌다.
이 다큐멘터리를 감독한 사라 아프샤르는 고문을 증언한 하마다가 기립박수를 받는 2017년 3월 사진을 공유하면서 "그는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말하고, 또 말했다. 세계는 왜 행동하지 않았을까? 왜?"라고 썼다.
하마다는 네덜란드에서 2020년 자취를 감췄다.
카데르 등 주변 사람들은 하마다가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받아오던 생활지원이 끊겼기 때문에 시리아로 귀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카데르는 하마다의 죽음에 알아사드 정권이 1차적 책임이 있지만 네덜란드 정부도 공동책임이 있다며 "그는 다마스쿠스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마다는 다마스쿠스 공항에 내린 직후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정황상 알아사드 정권에 다시 붙잡혀 투옥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다가 자취를 감춘지 1년 후 발간된 네덜란드 외무부 보고서는 그가 시리아로 귀국했고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적었으나, 그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카데르는 하마다가 겪은 고통에 대해 "죽음에서 부활해 다시 싸웠지만 서방세계에서 천천히 죽어야 하는 운명을 맞은 한 사나이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평가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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