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발의' 상법 개정에 재계 반발…"또 지배구조 규제인가"
개정 추진 당시부터 반대 이어져…21일 4대 그룹 사장단 긴급성명
이사 의무 확대·집중투표제가 경영권 공격수단 악용 가능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 권리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기업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것이 반대 주장으로, 재계는 국내 4대 그룹 사장단의 긴급 성명 등으로 이러한 개정안 통과를 저지할 계획이다.
20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19일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회사 이사 선임과정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내용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법인 기업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인원을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재계는 이러한 상법 개정안이 '해외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이라며 민주당 당론 추진 당시부터 우려를 표명해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을 만나 기업 활동 위축을 이유로 상법 개정 추진의 재고를 촉구했다. 14일에는 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자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8단체는 반대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기업들의 반대에도 상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발의로 이어지자 재계는 오는 21일 한경협과 4대 그룹 주도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박승희 사장, SK 이형희 위원장, 현대차 김동욱 부사장, LG 차동석 사장 등 주요기업 사장단 15명이 참석해 상법 개정안 통과 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반대하는 내용은 ▲ 이사 충실의무 확대 ▲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시 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배임죄 형사고발 등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이사가 다양한 주주의 이익을 모두 합치시키는 것이 불가능해 신속한 투자가 어려워지고,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이를 악용해 경영권을 공격할 수 있는 것도 반대의 이유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이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제한하는 상황에서 의무 확대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한다고 재계는 주장했다.
선출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된 감사위원을 2명 이상을 늘리는 개정안 내용도 재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대주주가 아닌 투기자본이 일명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해 결국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이 조항의 부작용으로 2003년 행동주의 펀드 소버린이 SK㈜를 대상으로 의결권 공격을 한 사례들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봤다.
당시 소버린은 SK㈜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를 통한 지분 쪼개기로 2.99%씩 매입했고, SK㈜는 소버린 측의 이사 선임을 막기 위해 위임장 확보에만 1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했다.
그 결과 주가가 폭등하자 소버린은 1조원의 단기차익을 거두고 한국에서 철수한 바 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문제로 지목된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 이사 선임 시 1주당 선임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재계는 개정안의 의도대로 소수 주주는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하기 어렵고, 헤지펀드들이 단기수익을 올리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나라가 러시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극소수라는 점도 반대의 이유다.
집중투표제의 부작용은 국내 기업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6년 칼 아이칸은 다른 헤지펀드와 연합해 KT&G 주식 6.59%를 매입했고, KT&G 정관상 집중투표 배제 규정이 없는 것을 이용해 3명의 이사후보를 추천하는 동시에 집중투표제로 선출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칼 아이칸은 사외이사 1인을 이사회에 진출시켰고, 그를 통해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자회사 한국인삼공사 상장을 요구하자 KT&G는 총 2조8천억원의 비용을 투입해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유정주 한경협 팀장은 "또다시 재계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지배구조 규제가 나왔다"며 "법이 통과되면 기업의 투자와 신산업 진출이 어려워지고, 일상적 경영 판단도 지체돼 결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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