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무역파고 넘는다] ④ 여한구 "라이트하이저, 디테일 강한 협상가"
"트럼프 행정부서 '성숙한 리더십'으로 통해…트럼프에겐 연금술사 같은 존재"
"보편관세 대비 협력 패키지딜 준비해야…군수·조선·원전·LNG 협력기회 많아"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17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무역 차르'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점쳐지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대해 "디테일에 강하고 협상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탑다운 협상가"라고 말했다.
여 전 본부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전임 관료들 사이에서 라이트하이저는 '어덜트 인더 룸'(Adult in the room·성숙한 리더십)으로 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 전 본부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우선으로 대비해야 할 무역통상 과제로 '보편관세 대비'를 꼽으면서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는 투자성으로, 다른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협력 의제나 패키지딜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과 철강 232조 협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여 전 본부장은 현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미국 워싱턴DC에서 활동 중이다.
다음은 여 전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전략을 전망한다면.
▲ 관세라는 수단을 휘둘러 무역적자를 대폭 줄이고 제조업을 일으키면서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기본 방향과 목적은 대선 과정에서 명백하게 제시됐다. 트럼프 2기에서 공약대로 한다면 관세의 폭과 수준이 1기 행정부의 10배에 이를 것이다. 거침없는 속도전이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굉장히 파괴적일 것이다.
-- 트럼프 협상단은 한국의 협상 스타일을 이미 잘 알기에 불리하지 않을까.
▲ 불안해할 필요 없다. 상대적인 게임이다. 보편관세는 한국, 일본, 대만, 유럽연합(EU) 등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붙기에 한국의 경쟁국 간 경쟁구도는 바뀌지 않는다. 1기 때는 한미FTA와 북미 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만 꼬집어서 했기 때문에 한국이 수세에 몰렸다.
-- 개인적으로 본 라이트하이저는 어떤 스타일인가.
▲ 트럼프 1기 때는 백악관 내에서도 관세, 통상정책을 놓고 격렬한 갈등과 논쟁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직 관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라이트하이저에 대한 표현은 공통적이다. '어덜트 인더 룸'(Adult in the room·성숙한 리더십)이다.
라이트하이저는 정치인들의 설익은 아이디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바꿔낸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협상 상대는 물론 의회, 이해 관계자, 노조를 모두 만족시키는 일을 했다. 트럼프 당선인에겐 '연금술사'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협상할 때는 디테일에 강하다. 철강 232조 협상 당시 철강 얘기가 나오면 그는 에너지가 넘치면서 다른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산업의 깊은 실정과 현실에 대해 아주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탑다운 형식으로 협상하면서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하고 챙기는 '핸즈온'(hands-on) 스타일이다.
-- 소비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와 별개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법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이 있나.
▲ 새 행정부 출범 전까지 온갖 루머와 추측이 난무하며 일희일비하겠지만 부화뇌동할 필요 없다. 소비자 세액공제 폐지는 선거 캠페인 때부터 이미 나온 얘기다. 스탠퍼드대 연구를 보면 인센티브 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결과도 있었다. 미국으로선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엄청난데 괜한 곳에 돈을 주는 정책은 축소하고 재원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고급 제품군 중에서도 상위그룹에 속하는 테슬라 전기차의 경우 소비자 세액공제가 없어도 잘 팔린다. 그래서 일론 머스크도 소비자 세액공제 폐지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전기차나 IRA 자체를 없애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IRA 관련 투자가 공화당 의원 지역구에 집중돼 있다. 이번 선거에서 중서부 공장지대를 공화당이 휩쓸었던 점도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가장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무역압박을 꼽는다면.
▲ 10∼20% 보편관세와 60% 대(對)중국 관세는 트럼프 2기 통상정책의 상징으로 전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입장에서 '한다면 한다'를 보여줄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무역적자가 많이 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보편관세라는) 그물망을 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때 한국이 거두는 무역흑자는 대미 투자성으로, 다른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협력 아젠다나 패키지딜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때다.
-- 보편관세를 올리면 미국 내 인플레가 우려되지 않나.
▲ 예를 들어 미국이 20개 국가를 상대로 보편관세를 매긴다고 발표를 한 뒤, 실제 시행 전에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그러면 관세 대상국들은 서로 협상하자고 줄을 설 게 뻔하고 라이트하이저는 책상에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행정부 전직 관료들은 이런 가정을 실제로 한다. 관세를 협상 레버리지로 사용하면서도 인플레 압박을 최소화하는 식의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한미 FTA,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식의 주장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것이다. 앞으로 무역적자를 한국이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정부와 기업이 치열하게 고민해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베트남, 멕시코와 다르다. 대미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반입된 기계, 원자재, 부품 등 중간재에 기반한다. 미국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순환 적자다. 이런 논리를 트럼프 1기 전직관리들에게 하며,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들의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인 무역적자를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고 하면 '그건 한국의 문제일 뿐이다.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를 해결할 방안을 가져와야한다'는 식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기업들이 미국과 제3국에 흩어진 생산기지를 통상환경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방향으로 무역적자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면서도 한국이 윈윈할 수 있을까.
▲ 대미 수출 환경은 관세장벽과 요새화로 어려워졌지만 관세 장벽을 점프해 미국 내로 들어오면 굉장한 기회가 열려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선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중심으로 한국기업들의 엄청난 투자가 있었다. 트럼프 2기에는 군수산업, 조선, 원전, 액화천연가스(LNG) 등 분야의 협력 기회가 많다고 본다.
배터리 산업도 전기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공위성, 수직비행 자동차 등의 미래 기술에 적용되도록 진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스페이스X에 공급할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인이다.
-- 한국에선 '트럼프 스톰'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 미국이 원하는 정책 목표를 명확히 인지하고 한국의 이익과 접점이 있는 니치(niche·틈새시장)를 찾으면 딜메이킹을 할 수 있다. 한국을 중심에 둔 사고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큰 그림을 보며 냉철하고 침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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