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 육박에 국내 산업계 희비 교차…수익성 악화 우려도
수출 기업, 가격 경쟁력 확보 긍정적…수출 실적 개선 기대도
북미 투자 비용 부담도…원자재 가격 상승·환차손 증가는 악재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에 육박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향후 미칠 파장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수출 기업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원자재를 사들여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 수출 기업에 단기적으로 긍정적…북미 투자비는 부담
6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7.6원 오른 1,396.2원으로 집계됐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 7일(1,401.2원)이 마지막이다.
환율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기업 수출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원자재 상승 등으로 인한 리스크가 우려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생산 및 판매지역, 제품에 따라 환율 영향은 달라질 수는 있다"며 "전체적으로 원화 약세가 실적과 수출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율이 계속 상승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대금 지급 등 현금 운용에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며 "이 때문에 환율이 안정적(스테이블)으로 가는 게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수출 버팀목인 반도체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의 경우 국내 생산이 많고 해외에 팔 때 달러로 받다 보니 환율이 오르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 구매해오는 웨이퍼나 원자재 가격이 오를 수 있어 이 부분은 리스크"라고 전했다.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환율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다소 부담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인디애나주에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짓는 데 38억7천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 테일러 공장의 경우 메인 공사가 끝나 설비 반입을 앞두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삽을 뜨기 전인 것으로 안다"며 "환율이 지속 상승할 경우 향후 장비·설비 반입 시 비용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의 경우 판매처에 따라 기업별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고, 주로 고객사가 외국 기업인 곳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더 크게 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가 북미를 중심으로 배터리 공장의 신·증설을 추진하고 있어 환율 상승으로 기존에 예상했던 투자액보다 늘어날 우려도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공장을 증설 중인 업체의 경우 비용 증가가 예상되지만, 이미 투자 집행 당시 환영향에 따른 시나리오를 짜놓은 만큼 (변동성이 엄청나게 크지 않다면) 기존 계획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의 대표 수출산업인 자동차 역시 환율 변동이 매출과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한국 자동차업계 매출은 약 4천억원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현대차·기아 등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다른 지역 수출량 대금 상당 부분도 달러화로 결제하는데 환율 상승은 달러화의 가치 상승을 의미하므로 자동차업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환율 상승분 중 일부는 부품, 원자재 비용이나 현지 마케팅 비용 등으로 상쇄되는 부분이 있다.
조선업계도 고환율이 실적 개선에 일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박 건조 계약금이 달러로 지불되는 만큼 원화 환산 금액이 늘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 기업들도 고환율 기조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한다.
◇ 항공·정유업계, 환차손 부담…철강·건설, 원자잿값 상승 주시
반면 항공사들은 달러가 강세일 경우 해외 현지에서 사용하는 부담이 높아지고, 유가가 올라 유류할증료가 가중되면서 해외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악재다.
외화환산 손실 규모도 늘어날 수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순외화부채는 약 28억달러로,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280억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수입 기업도 환차손이 발생해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의 경우 100%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후 석유제품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원유를 사들일 때 환차손이 발생한다.
에쓰오일(S-OIL)의 경우 2분기 원/달러 환율이 42.4원 상승하면서 환차손 1천522억원이 발생한 반면 3분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69.6원 하락하며 환차익 2천21억원이 발생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원유를 전량 달러로 사들이는 국내 정유업계는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면 환차손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정유업계는 생산한 석유제품의 절반가량을 수출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일부 수익을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환율의 급격한 변화는 변동성을 확대해 원유의 자산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의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업계도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익성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스코를 비롯한 주요 철강 회사는 수출을 통해 환율 헤지(위험 회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하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가 계속되면서 철강 수요도 위축되는 상황이어서 환율 인상에 따른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온전히 반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포스코는 "환율 변동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및 시나리오별 전망을 통해 환율 변동성 확대가 경영활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원자잿값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도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환율로 건설공사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공사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해외 수주 시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측면이 있고, 이미 수주한 프로젝트는 환차익이 생길 수 있어서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은 국내 시장이 부진하자 해외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달러가 강해지면 1천원짜리 해외 공사 계약이 1천400원이 되니까 수주 금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내로 보게 되면 원자재 가격 물가 인상 때문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장하나 김동규 김보경 오예진 임성호 한지은 강태우 기자)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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