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충돌 격화…독일 신호등 연정 무너지나
의회 예산 심의 앞두고 친기업 자민당 '최후통첩'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독일 '신호등'(빨강·사회민주당, 노랑·자유민주당, 초록·녹색당) 연립정부가 경제정책을 두고 갈등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붕괴 위기를 맞았다.
5일(현지시간) 일간 타게스슈피겔 등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총리(사회민주당·SPD)는 지난 3일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자유민주당·FDP)을, 전날은 린드너 장관과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보호장관(녹색당)을 총리실로 불러 내년도 예산안 합의를 시도했다. 독일 매체들은 오는 14일 예산안 의회 심의를 앞두고 3당이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연정이 결국 붕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한다.
연정 붕괴 가능성은 그동안 정부의 사회민주주의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어온 린드너 장관이 지난 1일 자신의 주장을 담은 18쪽짜리 문건을 공개하면서 가시화했다.
그는 문건에서 법인세를 인하하고 탄소중립 목표 시기를 2045년에서 2050년으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반도체업체 인텔이 독일 공장 신설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남게 된 보조금 100억유로(약 15조원)는 취소하고 연구개발 비용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친기업 '재정 매파'인 린드너 장관은 보조금을 퍼주는 방식으로는 경제 체질 개선이 불가능하다며 사회복지 혜택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달 29일에는 숄츠 총리가 경기 부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재계 관계자들을 소집하자 같은 날 따로 재계 간담회를 열며 불만을 드러냈다.
연정을 주도하는 SPD의 자스키아 에스켄 대표는 "린드너 장관이 나열한 주장은 연정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하베크 장관은 인텔 보조금 취소는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정 내부에서는 린드너 장관의 공개 제안을 사실상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FDP가 연정을 깨기 위한 명분을 본격적으로 쌓고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FDP 인사들은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데도 연정 내에서 뚜렷한 해결책을 합의하지 못하자 연정 탈퇴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해 왔다. 비잔 드지어자라이 FDP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경제정책은 현실과 어긋났다"며 "이제 책임 있는 경제장관이 무얼 제안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연방의회 총선은 내년 9월 예정돼 있다. 현재는 3당 모두 2021년 총선 때보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연정을 해체하고 조기 총선을 치를 경우 공멸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1일 여론조사에서 SPD 지지율은 16%로 제1야당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34%)은 물론 극우 독일대안당(AfD·17%)에도 뒤졌다. 지지율 4%를 기록한 FDP는 당장 총선을 치를 경우 의석을 배분받기 위한 하한선인 정당 득표율 5%를 넘기지 못해 연방의회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하베크 장관은 "정부가 좌초하기에는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고 말했다. 에스켄 대표도 "연정 붕괴를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숄츠 총리는 "엄중한 시기 경제와 일자리에 대한 눈앞의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며 "이념 아닌 실용주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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