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중병 앓는 미국…'증오의 파티' 끝났지만 나라 두동강
'축제의 장' 선거가 갈등의 화약고로 변질…초박빙 대결에 상대 악마화
"네가 이기면 나라 망해" 악에 받친 두진영…일각 "내전위험까지 우려"
"병든 민주주의" 비판도…"할리우드 영화에 나올법한 전쟁터 방불"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 대선의 대장정은 6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으면서 막을 내리게 됐지만 경쟁 과열 등에 따른 미국내 분열 양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정책대결 실종, 초박빙 대결 구도속 상호 비방전 격화 등으로 유권자들 간 반목이 위험 수준에 치달았다는 평가다.
카멀라 해리스(민주)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공화) 전 대통령이 맞붙은 2024년 미국 대선에서도 두 진영은 상대를 국가적 위협으로 간주에까지 이르렀다.
◇ 사회현안 곳곳 '화약고'…지지정당 따라 둘로 나뉜 나라
기본적으로 양당 정책목표의 차이가 확대돼 타협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 사회 현안이 즐비했다.
논의 자체가 문화전쟁을 촉발하는 이민, 총기, 인종 등 인화성 현안과 더불어 미국인은 지지 정당에 따라 두 동강이 나버렸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올해 8월 조사를 보면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따라 형성된 유권자 분열상이 선명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89%는 총기 소지권 확대가 시민을 보호한다고 봤으나 해리스 지지자 중에 그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해리스 지지자들의 88%는 이주민에게 개방적인 태도가 미국 정체성의 필수라고 여겼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34%만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 노예제가 현대 미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에 수긍하는 이들의 비율도 해리스 쪽에는 80%였으나 트럼프 쪽에는 24%로 현격히 낮았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포용, 정부 규제, 취약계층 지원 등 다른 상시적 보혁갈등의 소재를 두고도 두 진영의 견해차는 어느 때보다 컸다.
◇ 증오의 캠페인…대장정 내내 이민자 비하·상대진영 악마화
대선 캠페인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미국의 이 같은 정치적 양극화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 광고가 TV에 범람하고 선전구호 간판이 고속도로변을 장식하며 선거운동원이 집집이 초인종을 눌러대는 선거철에 불가피한 긴장고조다.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남미 이민자 증가와 그에 따른 기존 구성원들의 불만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며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 부통령의 실정을 비판했다.
이는 이민에 개방적인 정책 기조를 일자리, 치안을 해치는 악덕으로 몰아 지지기반인 저소득, 저학력 백인 유권자를 결집하려는 전략이었다.
트럼프 진영은 선거운동 내내 중남미 이민자를 비하하는 막말을 쏟아냈고 이는 사회 구성원 간 증오를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선이 임박하자 트럼프 진영이 이민자 출신지를 '쓰레기'로 부르고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지지자가 '쓰레기'라고 맞받는 추태까지 빚어졌다.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야외유세 중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암살 시도까지 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15일에도 플로리다주 자신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중 일촉즉발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
소수집단 비하를 넘어 상대 진영을 수권능력을 지닌 경쟁자가 아닌 타도 대상으로 악마화하는 전략도 선거운동 내내 성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과 그 지지자를 '광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부르며 지지층에 혐오와 경계를 부추겼다.
그에 맞선 해리스 진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성향을 독재자, 극우 전체주의로 규정하며 그의 재선이 미국의 위험을 빠뜨릴 것이라고 맞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직에서 물러나기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의 4개 형사사건, 34개 혐의 유죄평결을 집중 공격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해리스 부통령도 검사 경력을 내세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범죄자 낙인을 찍는 데 주력했다.
같은 인물을 한쪽에선 대통령직 부적격자, 다른 쪽에선 정치적 마녀사냥 피해자로 보면서 상대 진영을 향한 유권자의 적개심은 더 악화했다.
◇ "네가 이기면 나라 망한다"…악에 받친 두 진영 유권자들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서부와 북동부 해안, 공화당의 지지 기반인 중서부 주민의 상식 격차는 CNN과 폭스뉴스의 논조만큼 극단화했다.
사회 분열의 단적인 척도로 꼽히는 '지지정당이 다르면 사회적으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태도까지 확대된 것으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다.
이런 분열상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맞붙은 지난 대선 때에도 일찌감치 문제로 부각됐다.
퓨리서치센터의 2020년 11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두 진영은 상대 후보의 당선을 국가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트럼프 지지자의 89%, 바이든 지지자의 90%가 상대 후보의 당선이 국가에 오랜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듬해 1월 6일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발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동은 그런 적대관계의 증거로 거론된다.
이런 극한대치에는 237년 전 제정된 미국 헌법을 따르는 낡은 선거제도와 권력 집중도가 심한 대통령 중심제가 한몫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대선은 거의 모든 주에 적용되는 선거인단 승자독식제 때문에 일반 유권자 표심과 선거 결과의 영향력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불공정한 패배, 전혀 다른 이념과 정책을 지닌 상대가 국가비전과 개인적 삶의 방식을 좌우할 것이라는 유권자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조지아 주립대의 정치학자 제니퍼 매코이는 캐나다 CBC방송 인터뷰에서 "자기 진영 집권을 위해 민주주의 원칙을 희생시킬 용의가 있는 것"이라며 상황을 분석했다.
매코이는 미국이 유럽과 같은 많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정당이 얻은 표에 비례해 권력을 가져간다면 분열이 덜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선거 끝나도 계속될 고질…"장기적으론 의회마비 넘어 내전위험"
선거 열기는 선거가 끝나면 식기 마련이지만 지독한 양극화를 겪는 현재 미국은 선거로 증폭된 갈등이 가라앉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진단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등 연구진은 2022년 중간선거의 참여한 6만6천명의 인터뷰를 분석해 올해 9월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은 논문 '지속적 양극화: 미국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적개심의 예상하지 못한 내구성'에서 이런 추세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선거운동에 더 많이 노출된 개인이 더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감정은 선거 뒤에도 유지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선거에서 승리한 진영에서도 패배한 진영만큼이나 극단화한 성향을 유지한다는 분석 결과였다.
이번 선거로 심화한 분열은 지난 대선 때 발생한 의회폭동 같은 상징적 사건을 넘어 미국 사회 전반에 불안을 드리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 마케트대학의 정치학자 줄리아 아자리는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논평에서 "현재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사회적 양극화의 장기적 해악을 크게 걱정한다"고 전했다.
그는 사회적 분열 심화 때문에 의회 교착에 따른 입법행위 마비나 개인이나 집단 간의 적대적 행위를 넘어 심지어 내전까지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민주주의가 이미 병들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토마 스네가로프와 로맹 위레는 신간 '병든 민주주의, 미국은 왜 위태로운가'에서 선거를 포함한 미국의 제도가 점점 정통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고질적 문제를 주장했다.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려했던 미국의 분열 가능성이 오늘날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 등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미국의 민주주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올 법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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