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켜진 주러 北대사관…파병 밀착 속 "최근 활동적 분위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최근엔 완전히 달라져"
대사관 야외 게시판엔 김정은·푸틴 악수 사진…'북러 밀착' 과시
공항·쇼핑몰, 북측 사람들 목격…러 北식당은 "남측 손님 사절"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지난 28일(현지시간) 퇴근길 러시아워를 뚫고 찾아간 주러시아 북한대사관 앞.
초겨울에 들어선 모스크바는 낮 길이가 점점 짧아져 오후 5시만 돼도 어둑어둑하다. 이날은 비까지 내려 더 어둠이 짙었다.
'로씨야련방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 적힌 동판 너머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불빛 덕분에 건물에 펄럭이는 인공기의 모습도 보였다.
대사관 건물 모든 곳에 불이 켜진 것은 아니지만 불 켜진 층이 적지 않았다.
창살로 된 벽이 이중으로 둘러싸고 있고 무성한 나무로 가려져 있어 건물 아랫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내부 도로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주러북한대사관은 각국 대사관이 모여 있는 모스크바 모스필몹스카야 대로변에 위치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불가리아 대사관은 국기색(하양·초록·빨강) 장식 조명만 켜둔 채 모든 건물이 소등돼 있어 대조를 이뤘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2000년대 초반 북한대사관은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몇 년까지도 마찬가지였는데 최근에 완전히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북한대사관 인근에 대사관을 둔 국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전에는 북한대사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요즘엔 활동적인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최근 이러한 분주함은 북러가 밀착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으며, 이들의 쿠르스크 등 전장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현지시간 30일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내년 러시아 방문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대사관 정문 인근에 있는 야외 게시판에는 밝은 조명이 11장의 사진을 밝히고 있었다. 정중앙에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악수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주변에는 김 위원장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시찰하는 사진, 러시아 관계자들과 비행기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사진 등이 북러 밀착을 과시하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삼엄한 경비가 예상됐지만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초소는 비어있어 여유로움까지 느껴졌다.
북한대사관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키옙스카야역 근처 쇼핑몰에는 최근 북한 사람들이 쇼핑하는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면세점에서도 화장품 등을 잔뜩 사가는 북한인들이 목격됐다.
파병 군인보다는 관심을 덜 받고 있지만 러시아 곳곳에는 북한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러시아 카잔 브릭스(BRICS) 정상회의(10월 22∼24일) 준비 상황을 다룬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의 지난 18일자 기사를 보면 북한인들이 타일공으로 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모스크바의 한 교민은 "요즘 모스크바 대학교들에서 북측 사람들이 러시아어 수업을 받고 있다는 말을 유학생들에게서 들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서 어떤 러시아 청년이 북한 국가대표팀 운동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목격됐다.
반면 북러가 밀착하면서 한국과는 냉랭해지는 분위기도 모스크바에서 감지된다. 모스크바에 있는 북한 식당 '고려'는 여전히 한국 손님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식당은 작년 여름께부터 한국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인 이반 씨는 최근 이 식당을 방문했을 때 생일 파티를 하는 젊은이들, 외식을 나온 가족 등 러시아인들이 꽤 많이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북한 손님들은 홀에서 먹거나 별도의 방으로 안내받아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식당 직원에게 '다음에는 한국인 친구와 같이 오겠다'고 하니 '한국인은 안 받는다. 다른 북한 식당에서도 남한 사람들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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