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헤이워드갤러리서 선보인 양혜규의 다층적인 세계
5개 전시장에 120개 작품으로 작가 세계 집중 조명
英언론 혹평 SNS 공유하며 '브라보!'…"그정도 자신감은 있어"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작가가 살았던 인천 폐가에서 18년 전 열린 전시를 되살린 현장부터 작곡가 윤이상의 삶과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까지 120개 작품이 5개의 넓은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술 작가 양혜규(52)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 서베이 개인전 '양혜규: 윤년'이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막을 열었다.
서베이 전시는 작가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되짚어보면서 그 세계를 탐구하는 것으로, 이번 전시를 위한 커미션(주문제작) 작품에 이르기까지 콜라주, 텍스트, 비디오, 벽지, 음향까지 다각적 작품들로 작가 양혜규의 20여년 발자취를 짚어본다.
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융 마는 "'윤년'(Leap Year)이라는 제목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할 뿐 아니라, 4년에 한번인 윤년처럼 특별한 일을 뜻하며 뛰어든다(Leap)는 행위의 의미도 담는다"며 "마치 작가의 작업처럼 여러 가지 층위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갤러리에서 한국 언론과 만난 양혜규는 자신의 세월을 되돌아보는 서베이 개인전에도 감상에 젖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나쁘지 않다. 거의 만족에 가깝다"고 '쿨하게' 자평했다. 자신은 "전시가 다가올수록 차갑게 변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갤러리 측에 거의 모든 것을 맡기다시피 하며 '손을 뗀 것'에 이번 전시의 의의를 둔다고도 했다.
양혜규는 "작품을 하는 것과 전시를 하는 게 다를 수 있다"며 "작가의 비전으로만 끌고 가는 건 정리하고 전시의 '오너십'을 기관과 큐레이터가 많이 가져가도록 하는 게 지금 나의 성숙도"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건조대, 전구, 나일론 방울, 손뜨개 실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상적인 사물과 산업용품을 다양한 매체가 결합한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해온 그의 작업을 보여주는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신작 중에서는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가 눈에 띈다. 윤이상 '이중 협주곡'(1977)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다른 색상과 형태가 여러 층을 이룬 형태로 무대 조명과 음악이 뒤섞이며 시각과 청각을 상승 또는 하락으로 이끄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또한 입구로 들어서는 관객의 몸에 닿은 방울들이 청량한 소리를 내는 '농담(濃淡)진 소리 나는 물방울 - 수성 장막', 세계 각지의 고유한 직조 방식으로 짚을 엮어 만든 '중간 유형', 제의적인 종이 오브제를 참조한 '황홀망' 등 여러 작품이 전통과 민속적 특성을 드러낸다.
양혜규는 인류학자 같은 예술가의 역할을 언급하며 "인류가 지배구조에 좌우되는 것 같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부분이 곳곳에 편재한다. 이를 보고 탄복하고 경의를 표하는 데서 나오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인공지능(AI)이 미술을 비롯한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는 시대에 그의 작품들은 창작은 여전히 사람의 일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와 관련해 양혜규는 기계를 통한 작업과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하는 작업에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면서 어느 쪽이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의 전시에 대한 영국 주요 신문의 첫 반응은 엇갈린다.
일간 가디언은 별 5개 중 1개만 주면서 "거대하고 붐비면서 보람이 없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일간 텔레그래프는 별 4개를 주면서 "한국의 작가가 예술적인 자연스러움으로 놀랍고도 평범한 것들로부터 조각과 설치 미술을 소환해 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양혜규는 이 두 리뷰를 모두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공유했다. 특히 전시를 혹평한 가디언에는 "자기만의 의견이 아주 강한(highly opinionated article) 기사, 브라보!"라는 언급까지 달았다.
이날 한국 언론 간담회에서 양혜규는 "제게 그 정도 컨피던스(자신감)는 있다"며 "비평은 다양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시는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내년 1월 5일까지 이어진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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