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저항의 축' 수뇌 암살, 이스라엘에 득?…"장담못해"
1992년 수장 암살 겪고도 헤즈볼라 건재…조직와해 목표 달성 미지수
더 급진적인 인사가 수장 자리 물려받으면 이스라엘에 역효과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지난 7월31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에 귀빈으로 참석했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테헤란 북부에 있는 귀빈 숙소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그로부터 약 두 달이 흐른 지난 27일에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32년간 이끌어온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서 이스라엘군의 맹렬한 폭격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이 주도하는 이른바 '저항의 축'의 거센 저항을 받아온 이스라엘은 이처럼 지도부 암살을 통해 막강한 정보력과 군사적 전술 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면 이런 영화 같은 지도자 암살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저항의 축 무장세력을 무너뜨리거나 약화하지는 못했으며, 이번에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CNN 방송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들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992년 나스랄라의 전임자이자 헤즈볼라의 공동 창립자인 아바스 알 무사위를 헬리콥터 공격으로 살해한 바 있다.
또 2008년에는 헤즈볼라의 군사 조직 지도자인 이마드 무크니야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차량폭탄 공격을 통해 살해했다.
그뿐만 아니라 2004년 3월에는 하마스의 창설 멤버이자 최고지도자였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을, 그리고 불과 한 달 뒤에는 야신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표적 공습해 제거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지도자가 피살 때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뒤에도 조직을 유지해왔고 때론 이스라엘에 맞서 더 급진적 성향을 가진 지도자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해 1천200여명을 학살한 것도 급진적 성향을 지닌 지도자의 영향이 적지 않은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CNN 방송은 나스랄라 살해가 이스라엘에 단기적으로 중요한 보상이지만 장기적인 영향은 불확실하다면서, 미국이 그동안 테러 집단으로 분류해온 탈레반, 후티 반군, 이슬람국가(IS)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장기간의 추적 끝에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면서 알카에다가 일시적으로 흔들린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40년간 유지되어온 헤즈볼라는 과거 사례로 볼 때 조직을 재건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임명한 뒤 다시 이스라엘에 저항할 것이라고 방송은 덧붙였다.
일간 가디언은 현실적으로 나스랄라 암살이 헤즈볼라에 어떤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지를 확인하려면 최소 몇 달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나스랄라가 수십 년간 헤즈볼라를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 사회의 사회 서비스 제공자이자 군대로 키워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책임자인 사남 바킬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헤즈볼라는 군사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약화했다. 또 전쟁이 확대되면 그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사기와 정통성은 더욱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원로 언론인 잭 쿠리는 일간 하레츠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헤즈볼라 지도자를 표적 살해한 적이 있지만, 그들의 대체자들은 더 온건하거나 덜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는 따라서 "주의해야 할 점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세력이 약해졌지만 물러서지 않았으며, 싸움이 계속되면 의심할 여지 없이 또 다른 세대의 전사들이 동원되거나 급진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즈볼라를 오래 관찰해온 전문가인 니컬러스 블랜퍼드는 싱크탱크 아틀랜틱 카운슬 기고문에서 "헤즈볼라는 강력한 지휘 계통을 가진 공고한 조직으로 지도부는 연속성을 갖는다"며 "다만 나스랄라와 함께 다른 중요한 지도자들이 죽었다면 지휘권 재확립 과정이 복잡해지거나 지연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의 다음 움직임에 대한 대응도 부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새로운 헤즈볼라 지도자로 나스랄라의 사촌이자 헤즈볼라 집행이사회 이사장, 헤즈볼라의 군사 작전을 기획하는 조직인 지하드 평의회 의장인 하심 사피에딘 유력하게 거론된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헤즈볼라는 나스랄라보다 더 급진적인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도 소개했다.
싱크탱크 대서양협의회의 알리바 브라히미는 "나스랄라는 지정학적 게임에 깊이 사회화된 합리적인 행위자였다"라며 "그의 뒤를 이을 다음 지도자는 더 성급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 인터내셔널, 타스통신은 30일 사우디아라비아 알아라비야를 인용해 헤즈볼라의 집행이사회가 사피에딘을 나스랄라의 후임으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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