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리베이트 탈세' 건설·의약·보험업체 47곳 세무조사
강민수 청장 취임 후 첫 기획 세무조사…"리베이트 제공·수취자 모두 추징"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상품·용역 대가의 일부를 일종의 '뇌물'처럼 되돌려주는 불법 리베이트에 대해 과세당국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건설업체 17곳, 의약품업체 16곳, 보험중개업체 14곳 등 총 47개 업체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7월 강민수 국세청장 취임 후 첫 기획 세무조사다.
리베이트는 뇌물적 성격의 부당고객 유인 거래로 아파트 부실시공, 의약품 오남용 등 치명적인 사회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건설업체가 사업을 따내기 위해 허위 세금계산서로 재건축조합에 뒷돈을 대주거나 의약품 업체가 "우리 약을 처방해달라"라며 의사에게 현금 등을 건네는 행위가 대표적 사례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리베이트는 대다수 국민이 누려야 할 혜택을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으로만 집중시키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오른 건설·의약품·보험중개업은 모두 법률에 따라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받을 수 없는 업종이다.
하지만 의약품 시장은 리베이트 거래가 오랜 관행처럼 남아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어떤 약품을 처방할지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 의약품 업체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약품이 처방되도록 하기 위해 의사들에게 거액의 불법 리베이트를 건네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한 의약품 업체는 의원 원장 부부의 예식비·신혼여행비·예물비 등 결혼 비용 수천만원을 리베이트로 대납했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병원 소속 의사의 서울 최고급 호텔 숙박 비용 수백만원을 대신 결제해 준 제약업체도 세무조사를 받는다.
국세청은 리베이트를 의약품 업체의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법인세를 추징하는 동시에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을 상대로도 소득세를 매겼다.
세무조사 대상이 된 의료인 규모는 지금까지 수백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앞으로 조사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건설 분야에서는 시행사·재건축조합 등 공사 발주처의 특수관계자에게 '뒷돈'을 대준 건설업체 등이 세무조사의 타깃이 됐다.
한 건설업체는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대가로 조합장 자녀에게 수억원의 가공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고경영자(CEO) 보험' 중개업체는 최근 리베이트 거래가 늘고 있는 신종 분야로 꼽힌다.
CEO 보험은 CEO나 경영진의 사망 등 사고가 발생해도 사업의 연속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보험이다. 지원되는 보험금만 10억원대 이상인만큼 납입 보험료도 연간 수천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중개업체들은 CEO 보험금이 법인 비용으로 처리된다는 점을 악용해 보험 가입을 대가로 사주 일가에 리베이트를 건넸다.
고액의 법인 보험을 팔면서 법인의 사주 등 특수관계자를 보험설계사로 허위 등록해 이들에게 수억원의 수당 등을 지급한 것이다.
국세청은 리베이트 세무조사 과정에서 조세 포탈,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등 조세범칙 행위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민주원 국장은 "다른 분야의 리베이트 수수 행태도 지속해 파악하고 사회적 부작용이 심각한 사안은 빠짐없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