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무기는 유럽서 사야"…EU 경쟁력 보고서 비전 제시
드라기 ECB 前총재, '방위산업 자립' 강조…"인센티브 마련해야"
무기 지출 63% 미국업체로, 한국도 주요 무기 공급처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9일(현지시간)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발표한 유럽 경쟁력 제고 방안에는 '유럽의 무기 자립' 문제도 비중 있게 포함됐다.
무기 조달에 있어 미국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앞으로는 필요한 무기를 유럽 안에서 사들여야 하며, EU도 이를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드라기 전 총재는 이런 내용을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표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에 담았다.
EU 집행위원회의 의뢰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총 327쪽 분량에 국방뿐만 아니라 반도체, 청정기술 등 다양한 부문별 상황 진단과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
유럽의 '방위산업 자립'을 강조하는 드라기 전 총재의 제안은 유럽이 무기 구입에 있어 미국 방산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많은 EU 회원국이 재무장에 나섰는데, 2022년 6월부터 2023년 6월까지 EU 국방비 지출액 750억유로(약 111조2천억원) 중 78%는 EU 밖에서 쓰였다. 특히 미국 방산업체로 들어간 돈이 63%에 달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보고서에서 EU가 모든 무기 재고를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엔 미국에서 사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면서도, "많은 경우에 유럽과 동등한 것이 존재하거나 (당장 없더라도) 급속하게 제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유로파이터의 타이푼, 다소의 라팔 전투기, 레오파르트2 7+ 주력전차 등 자체 생산 무기가 있다.
하지만 많은 나라가 무기를 유럽 밖에서 조달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 폴란드, 루마니아, 벨기에, 덴마크, 체코 등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라이트닝 Ⅱ를 이미 구매했거나 구매할 계획이다.
폴란드는 한국에서 천무 다연장 로켓, FA-50 경공격기, K2 전차, K9 자주포 등을 사들였고, 루마니아도 한국과 무기 계약을 맺었다. 한국은 유럽 무기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혀가는 중이다.
유럽의 늘어나는 무기 수요로 해외 방산업체들이 이득을 보고 있지만, 정작 유럽 방산업체들은 자국 내 무기 수요에 부응하기도, 우크라이나 공급용 무기를 생산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현금흐름 개선을 제안했다.
그는 각국 정부가 유럽 무기를 사게끔 EU 자금과 연계된 '실질적인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접근방식 중 하나로 유럽방위기금(EDF) 및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에서 이미 실행되거나 제안된 자격 기준에 자금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들었다.
드라기 총재는 또 소규모 회사가 난립한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 지출과 공동 조달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방위산업이 통합 수준의 규모에 도달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무기회사들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1990년 이후 방위산업 기반이 51개 선도 기업에서 5개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 소수 공급업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위험성도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드라기 전 총재는 또 EU의 방위산업이 민간 자본을 동원하려면 EU 자금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투자은행의 대출 정책을 단순히 민·관 이중용도 프로젝트에 제한하지 말고, 순수 방산투자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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