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철군 거부…이스라엘, 가자·이집트 국경 따라 도로 건설
"전문가들 "하마스·중재국 겨냥 심리전…주둔 기정사실화 시도"
美 주도 휴전협상도 결렬 위기…"이스라엘 이어 하마스도 새 조건 내걸어"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를 잇는 이른바 '필라델피 회랑'을 따라 새 포장도로를 건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BBC 방송은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가자 남쪽 국경을 따라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면서 "일부 해설가들은 이를 조만간 전면철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 지역을 촬영한 민간 위성사진을 살펴보면 지난달 26일 지중해 쪽 끝에서 공사가 시작된 모습이 처음 포착된 것을 시작으로 국경 장벽을 따라 건설이 진행돼 온 모습을 볼 수 있다.
BBC는 9월 5일 기준으로 새 포장도로의 길이가 6.4㎞에 이르렀고, 소셜미디어 등에 올려진 영상에는 중장비 등을 동원해 대형차량 두 대가 한꺼번에 지날 수 있는 너비의 도로가 깔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와 이집트간 국경의 전체 길이는 12.6㎞로, 서쪽은 지중해, 북쪽과 동쪽은 이스라엘과 접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전쟁 발발 전까지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고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여겨졌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군대와 정착민을 철수시키면서 이 지역에 대한 통제를 중단했다.
하지만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벌어지자 올해 5월초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국경검문소의 팔레스타인 측 구역을 점령하고 필라델피 회랑 전체를 통제하에 넣었다.
이스라엘군은 비슷한 시기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이른바 '넷자림 회랑'에도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주변 건물들을 철거해 완충지대를 마련하는 등 장기 주둔을 위한 포석으로 여겨지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소속 전문가인 안드레아스 크레이그 박사는 "포장도로를 까는 건 협상가들과 중재국들에게 압력을 준다. 이스라엘이 현상황을 기정사실로 만들려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군 퇴역 장성인 사미르 파라지 전 소장도 "이건 심리전이다. 여러 당사자에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미디어 전쟁을 위한 길을 닦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필라델피 회랑은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에서 '뜨거운 감자'가 돼 왔다.
지난 7월 말 필라델피 회랑 영구주둔 등 새 요구사항을 들이밀어 협상을 난항에 빠뜨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달 2일 기자회견에서 "필라델피 회랑은 하마스의 숨통이자 재무장을 위한 공급선"이라면서 전후에도 이스라엘군이 이 지역에 주둔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집트, 카타르 등 중재국들은 지난달 31일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6명이 가자지구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을 계기로 휴전 협상 타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했으나 결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양측이 한때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팔레스타인인 무장대원들을 적절한 시기에 이스라엘 군인 신분의 인질과 교환해 석방한다는 합의에 이르렀으나 이후 하마스 측이 이를 뒤집었다고 보도했다.
민간인 인질도 팔레스타인인 장기수감자와 교환해서만 석방하겠다고 하마스가 이번주 말을 바꾸면서 가뜩이나 네타냐후 총리가 새 조건을 제시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협상이 결렬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WP는 "미국은 이집트, 카타르와 함께 여러 차례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고 믿었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새 요구로 번번이 대화를 탈선시켰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 전 전쟁을 종식하고 인질을 귀환시킬 기회가 더욱 멀어졌다"고 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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