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72명 사망 '영국판 세월호'…총리 "국민보호 의무 못해 사과"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2017년 72명 사망자를 낸 영국 공공 아파트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는 관련 기업들의 부정직과 정부의 안전 규제 실패에 원인이 있다는 공공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4일(현지시간) BBC 방송과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그렌펠 참사 공공 조사위원회는 참사 7년 만인 이날 발표한 최종 보고서에서 건축 자재 업체들의 '체계적 부정직'과 안전에 대한 경고음을 간과한 정부의 실패가 합해진 결과라고 밝혔다.
2017년 6월 14일 새벽 런던 노스켄싱턴에 있는 24층 공공 서민 아파트 그렌펠 타워 4층의 한 냉장고에서 시작된 불은 건물 전체로 번졌다. 이 화재로 72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부상했다.
197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이 2016년 외벽 재단장을 거치면서 가연성 소재를 사용한 탓에 불이 짧은 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것으로 2019년 나온 1단계 조사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당국의 안전 규제 감독 및 대응 실패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그렌펠 참사를 한국의 세월호 참사에 빗대기도 했다.
마틴 무어 빅 조사위원장은 이날 그렌펠 참사가 "대부분의 무능, 일부의 부정직과 탐욕에 따른 것"이라며 "모든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게 단순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1천694쪽에 달하는 이번 최종 보고서는 외벽 재단장과 연관된 대부분 업체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무능함을 보였고, 정부와 지역 당국은 수십년간 안전 우려를 경시해 참사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외벽 마감재 제조업체인 아코닉은 자사 제품이 상자 형태로 구부려졌을 때 얼마나 화재에 위험해지는지 고의로 숨긴 것으로 조사됐다.
절연용 소재 제조업체 셀로텍스는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언급으로 고객사를 오도했고 그렌펠 절연재의 5%에 사용된 킹스팬도 특정 조건에서 시험된 제품에 대해 시장을 오도한 것으로 지적됐다.
아코닉은 보고서 발표 직후 자사가 정보를 숨기거나 오도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킹스팬은 화재 확산 원인이 된 소재는 자사 제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건축 사무소와 프로젝트 관리업체, 외벽 설치업체, 건축 자재 안전성을 인증하는 민간 조직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조사위원회는 판단했다.
지역당국인 켄싱턴·첼시 자치구와 임차인관리기구(TMO)는 화재 안전에 지속적으로 무관심했고, 안전 우려를 제기한 주민들은 '전투적인 말썽꾼' 취급을 받으며 TMO와 갈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1991년 머지사이드주 노슬리하이츠 화재, 2001년 외장재와 관련한 대규모 화재 시험, 2009년 런던 캠버웰 주택 화재 등 수십년간 가연성 자재의 치명적 위험과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적절하게 조처하지 못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 속에 건설 담당 부처는 안전 부문을 경시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와 같은 대형 화재에 대비한 소방 당국의 주민 대피 전략 및 훈련도 부족했다고 보고서는 비판했다.
보고서는 건설 부문의 규제를 정비하고 정부 감독과 소방 당국 대응을 개선하기 위한 58개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국가를 대표해 사과한다"며 "국가가 국민 보호라는 가장 근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는 "여전히 외장이 안전하지 않은 건물이 있다"며 "이는 변화의 순간이어야 하고 우리는 속도를 내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검경 수사는 내년 말까지 이어지고 2026년 말까지 기소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B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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