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CEO 범죄수사로 '암호화 기술' 논쟁 재점화
프랑스 검찰, 파벨 두로프 혐의에 '무허가 비밀성 확보 서비스' 적시
사생활 보호냐 범죄도구냐…규제·기업저항 불꽃 튀길 듯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프랑스가 텔레그램 경영자의 사법처리를 추진하면서 다른 메신저 대기업들이 긴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화의 비밀을 유지해주는 암호화 기술을 통제하려는 정부 당국의 개입이 본격화하는 사안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랑스 검찰이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를 예비 기소하면서 발표한 성명에는 '허가 없이 비밀성을 확보하게 해줄 목적으로 암호화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텔레그램의 핵심 보안기술인 암호화의 직간접적 범법성을 따지자는 것으로 작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텔레그램은 시그널, 메타의 왓츠앱, 애플의 i메시지와 마찬가지로 대화 때 종단간 암호화(End to End Encryption) 서비스를 제공한다.
종단간 암호화는 메시지를 보낸 직후부터 받기 직전까지 전 과정을 암호화해 중간에서 정보가 새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사회적으로 이익과 해악이 공존해 논쟁을 불렀다.
암호화가 디지털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지만, 다른 한편에서 은밀한 범죄에 악용되는 때도 많아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텔레그램도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아래서는 사생활을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이기로 찬사를 받아왔으나, 범법 행위 흉기로 전락했다는 비판 역시 거세다.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범죄조직의 불법 거래 등에 쓰였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공범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온라인 메신저가 범죄에 사용된 상황에서 경영자에게 형사 책임을 함께 묻고 있는 것이다.
메타, 애플, 시그널 등 다른 메신저 서비스들로서는 텔레그램과 같은 궁지에 몰릴 가능성에 수사의 전개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들 업체는 이전에도 암호화 기술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왓츠앱은 테러 같은 강력범죄를 막기 위해 암호화 수준을 완화하라는 다수 국가의 정부들과 법정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작년에 왓츠앱은 영국 의회가 앱에서 암호화를 제거할 것을 명령하는 대책을 승인하면 영국 시장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당시 시그널도 영국이 암호화 규제로 자사 앱의 보안을 강제로 약화한다면 영국에서 반드시 철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애플은 2020년 암호화를 해제해 테러범의 아이폰에 담긴 자료에 접근하게 해달라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요청을 거부하며 승강이를 벌였다.
암호화를 둘러싼 정보기술 기업과 당국의 논쟁은 텔레그램 수사를 넘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은 메신저 서비스가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탐지하도록 사진과 링크를 살펴보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고객의 사생활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암호화 기술을 옹호하는 기술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부를 사안으로 관측된다.
NYT는 왓츠앱, 시그널, i메시지와 비교하면 텔레그램의 보안 수준이 낮지만 암호화 기술의 대표주자로 수사를 받는다는 점을 따로 주목했다.
왓츠앱, 시그널, i메신저가 종단간 암호화를 처음부터 전제로 하는 기본값(디폴트)으로 설정하지만 텔레그램은 선택사항이다.
텔레그램은 수천 명씩 모일 수 있는 단체방이 있지만 1대1 대화에서만 암호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텔레그램은 소프트웨어 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암호화의 취약점을 찾아 지적할 수 있게 하는 시그널과 같은 투명성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NYT는 두로프가 암호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을 이용해 텔레그램이 안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며 이는 미국 기술기업 경영자들이 개탄스러워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텔레그램의 보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유해 콘텐츠가 밖으로 나돌았고, 그 덕분에 프랑스 당국이 칼을 빼 들 수 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법률업체 필드피서의 데이터·프라이버시 전문 변호사인 재크 저지-라자는 "텔레그램은 종단간 암호화를 디폴트로 삼지 않는 몇 안 되는 서비스"라며 "이는 모든 게 누구나 보는 데 있다는 점 때문에 텔레그램 몰락의 일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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