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비싼 주택, 사위·며느리한테 증여하는 까닭은?
집값 올라 상속세 대상 급증…자녀 배우자·손주 등에 분산 증여 확산
증여·상속세 절세 효과 커…'자녀 5억 공제로?' 정부 상속세 개편 촉각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서울에 거주하는 김모(75) 씨는 최근 강남의 4층짜리 상가주택을 2년에 걸쳐서 아들과 며느리, 10대의 손주에게 사전 증여했다.
처음엔 아들에게 토지 지분 25.1%만 넘겼다.
그러다 2년 뒤 다시 아들에게 토지 지분 26.9%를 추가 증여해 아들의 지분을 52%로 늘렸고, 나머지는 며느리에게 33.5%, 손주에게 14.5%를 각각 증여했다.
김씨가 아들은 물론이고 며느리와 어린 손주들에게까지 자신의 지분을 미리 증여한 이유가 뭘까.
◇ "서울 아파트 1채만 있어도 상속세"…자녀→며느리·사위로 분산 증여
부모가 자기 재산을 매매하지 않고 자녀에게 넘기는 대표적인 방법이 증여와 상속이다.
증여세와 상속세는 동일하게 10∼50%의 누진세율이 적용되지만 증여세는 증여받는 사람을, 상속세는 고인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세금에도 차이가 있다.
그동안 사전 증여는 부모의 재산이 많은 경우 미래의 상속세를 줄이는 방편 가운데 하나로 사용돼왔다.
대출이나 전세를 낀 '부담부 증여' 등의 방식으로 부동산을 미리 증여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모 사망 후 상속 재산에 합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전 증여 대상은 주로 자녀 한정이 많았다. 사위, 며느리 등 출가한 자녀의 배우자에게 재산을 증여했다가 백년해로하지 못하고 갈라설 경우를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출가한 자녀의 배우자나 어린 손주들에게까지도 지분을 미리 분산(분할) 증여하는 사례들이 크게 늘고 있다.
분산 증여가 확산하는 것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상속세 부과 대상이 급증한 영향이 크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원(KB국민은행은 12억원)을 넘어서면서 강남은 물론 강북의 웬만한 아파트 1채만 소유해도 상속세를 내야 할 납세 대상자들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미래의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당장의 증여세도 낮추기 위해 며느리, 사위, 손주 등 최대한 많은 가족에 부동산의 분산 증여를 택하고 있다.
상속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로 대상이 특정되지만, 증여는 원하는 만큼 증여 대상을 늘릴 수 있어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집값 상승으로 보유세 부담은 커지고, 상속 재산은 늘어나면서 자녀 1∼2명으로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감당하기 힘든 시대가 되면서 며느리, 사위, 손주 등에게 공동 증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며느리, 사위도 내 자식이라는 사회적 인식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 서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신도시 정비사업 호재가 있다 보니 부모가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또는 신규 매입한 아파트를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에게 사전 증여를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며 "과거에는 아들, 딸에게만 줬는데, 달라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 증여 대상 늘려 절세 노려…자녀는 10년 지나야 상속 재산 배제
그렇다면 자녀 외에 며느리와 사위, 손주 등으로 분산 증여할 경우 절세 효과는 얼마나 될까.
김종필 세무사의 도움으로 출가한 두 자녀(아들, 딸)와 2명의 손주를 둔 A씨의 사례를 분석해봤다.
A씨는 시가 24억원 아파트와 시가 5억원의 오피스텔 각각 1채, 16억원의 금융자산 등 총 45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A씨가 사망하면 1순위 상속 대상은 자녀 2명(추후 상속세 문제로 배우자는 법정상속 포기)이 되며,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약 11억5천만원에 달한다. 상속 재산의 26%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A씨는 이 때문에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24억원 상당의 아파트 1채를 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와 사위, 손주 2명 등 6명에게 각각 분산 증여했다.
어른 4명은 지분 20%씩, 손주 2명은 10%씩의 비율로 나눴고 총 4억7천200만원(증여세 3억8천100만원+취득세 9천100만원)의 증여 비용을 부담했다.
이후 미래의 상속세는 A씨의 상속(사망)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증여 재산이 상속 대상에서 빠지는 기간이 상속인(배우자, 자녀)은 증여 후 10년, 상속인이 아닌 경우(자녀의 배우자, 손주 등)는 증여 후 5년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A씨가 증여 후 10년이 지나 상속한다면 앞서 증여한 아파트는 전체가 상속 대상에서 제외돼 상속세가 2억100만원 선으로 감소한다.
앞서 사전 증여 비용(4억7천200만원)을 합해 상속까지 총 6억7천300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사전 증여 없이 그냥 상속받았을 때(11억5천만원)보다 약 4억7천700만원(41.5%)을 아낄 수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사전 증여 후 10년 뒤면 집값이 증여 시점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실제 절세 효과는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A씨가 사전 증여 후 5년 뒤에 상속한다면 어떨까.
이때 며느리와 사위, 손주 2명에게 증여한 지분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두 자녀에게 증여한 지분 40%는 사전 증여 시점이 10년이 지나지 않아 상속 대상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상속세가 4억1천500만원 선으로 늘어 10년 경과 후 상속하는 것보다 세금이 2배가량 많아진다.
앞서 사전 증여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 8억8천700만원이 들어 사전 증여 없이 상속받을 때보다 2억6천300만원(22.9%)만 절감된다.
사전 증여를 안 하는 것보다는 유리하지만 증여 후 10년 경과 시점보다는 절세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 부모 건강 상태·증여 대상자 수 따져야…정부 상속세 개편은 변수
재산이 많을수록 분산 증여의 효과는 커진다.
A씨가 아파트를 6명에게 분산 증여하지 않고 아들과 딸 2명에만 지분 50%씩 증여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증여 비용은 총 6억7천300만원(취득세 포함) 선으로 6명에게 분산 증여했을 때보다 세 부담이 2억원이 늘어난다.
또 사전 증여 후 5년 이내에 상속할 경우 상속세(5억6천800만원)와 사전 증여 비용까지 총 12억4천100만원이 필요해 오히려 사전 증여를 하지 않고 상속받았을 때(11억5천만원)보다 세 부담이 증가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다.
증여 후 10년이 지난 뒤 상속하면 상속세(2억100만원)와 사전증여 비용까지 총 8억7천400만원이 들어 2억7천600만원을 절감할 수 있지만, 6명에게 증여할 때보다 절세 효과는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절감을 위해 사전 증여를 할 때는 증여 시점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종필 세무사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하려면 건강할 때 가급적 빨리 증여하고, 나이가 들어 증여할 때는 합산 기준이 짧은 사위나 며느리 등으로 증여 대상을 넓히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집값도 고려해야 한다. 집값 상승기에는 증여가액이 커져 증여세 부담이 커지는 만큼 하락기에 증여하는 것이 낫다.
신한은행 우병탁 부동산팀장은 "사전 증여가 절세 효과가 크지만 배우자나 자녀의 경우 추후 상속 공제 한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상속 재산의 규모나 시기를 잘 살펴야 한다"며 "또 증여 사실을 번복할 수 없는 만큼 며느리, 사위 등에 증여할 때는 장래 혼인관계의 지속 여부와 부모의 건강 상태 등을 면밀히 따져보고 증여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상속세 개편이라는 대형 변수가 등장했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한 명당 받을 수 있는 상속세 공제 금액을 현행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이 안대로 법이 개정되면 상속 재산이 17억원 정도면 배우자 공제 5억원, 자녀 공제 10억원(2명), 기초공제 2억원까지 총 17억원이 공제돼 상속세가 나오지 않는다.
부의 대물림에 부정적인 야당 설득이 관건이지만, 이 안대로 상속세가 개편되면 부동산 시장에도 적잖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김종필 세무사는 "법이 통과되면 다른 재산이 많지 않은 경우 웬만한 서울 아파트 1채 정도는 상속세 부담 없이 자녀 등에게 넘겨줄 수 있기 때문에 절세 목적의 사전 증여 수요가 감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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