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편이 6·25 참전용사라며 기부"…'달리는 스님' 美 횡단 완주
베트남 학교시설 지원 모금 위해 5천여㎞ 달려…유엔본부서 대장정 마무리
"조그만 마을 한국戰 참전용사 기념공원 인상적…달리면서 감사 마음 표해"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달리는 스님' 또는 '마라톤 스님'으로 유명한 진오 스님이 베트남 농촌학교의 화장실 건립 재원 마련을 위해 나선 '미국 26개 주 5천300㎞ 횡단 탁발(托鉢) 마라톤'의 완주를 눈앞에 뒀다.
진오 스님은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일 뉴욕 유엔본부를 종착점으로 미국 횡단 탁발 마라톤을 마무리하고 회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뉴욕 센트럴파크에 도착해 대장정을 사실상 마무리한 진오 스님은 유엔 회원국 16개국의 6·25 전쟁 참전을 기념해 26일 오후 3시 유엔본부 앞까지 한인 동포들과 함께 마지막 3㎞를 걸으며 평화행진을 한다는 계획이다.
진오 스님은 지난 2011년 교통사고로 다친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처음 마라톤을 뛴 게 인연이 돼 그의 고향을 방문했다가 학교의 열악한 위생환경을 보고 '베트남 농촌학교 해우소 108개 지원'이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당시 과오에 관한 자료를 접한 것도 베트남의 미래 세대 교육환경 개선 사업을 계획한 계기가 됐다.
지난 2012년 시작한 이 사업으로 현재까지 총 82개 화장실이 건립됐다.
미국 횡단 마라톤도 베트남 농촌학교 화장실 지원을 위한 재원 8천만원을 모금하겠다는 목표로 계획됐다.
4년 전인 2020년 2월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미국 횡단 마라톤을 시작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40여일 만에 오클라호마주에서 달리기를 중단하고 발걸음을 돌린 바 있다.
이후 지난 5월 23일 오클라호마주 보이스시티에서 남은 3천300㎞를 달리기 위해 다시 횡단을 시작, 두 달간 매일 50㎞ 안팎을 걷거나 달렸다.
진오 스님은 이번 달리기를 통해 모금 외에 한미 관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길을 헤매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남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뛰던 저를 보고 찾아와 20달러를 기부하셨다"며 "그분 자동차 뒤에는 '코리아'(Korea)와 '잊혀진 전쟁'(The Forgetten War)이라고 쓰여진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진오 스님은 또 횡단 코스의 조그마한 마을들을 지나면서 마을 입구마다 2차 대전이나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의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공원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진오 스님은 베트남 학교시설 지원을 위한 모금 목적을 설명하면서 베트남전에 한국군도 참전해 희생을 치렀다는 점을 미국인들에게 알렸다고 했다.
그는 "공동묘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보면서 '잊혀진 전쟁'으로 표현하는 것에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이후 달리기 현수막 문구에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도록 자유를 지켜준 데 대해 감사하다는 의미를 담아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진오 스님은 "4년 전 횡단 달리기 때보다 체력이 줄고 끝없이 이어진 사막과 고도 900여m의 고개를 거친 숨소리로 버티면서 더는 이런 고행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면서 "목표가 있고 의지가 있어 견뎌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완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 끼 식사와 숙소 예약 등을 도와준 동행 봉사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들 덕분에 하루 이동 목표를 달성하면 차량으로 숙소까지 이동한 뒤 다음 날 다시 전날 멈췄던 곳으로 돌아와 이어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진오 스님은 "이번 달리기로 한국과 미국, 베트남 3국의 우호 증진을 공유할 수 있게 돼 기쁘다"라면서 "다음 목표는 한국전쟁 참전국인 필리핀에서 어린이 돕기 탁발 마라톤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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