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앙상한 아이들…"가자지구에 이미 기근 시작됐다"
"두달 전 밀가루가 마지막"…"어린이 등 영양실조 사망"
유엔, 식량난에도 "사망자수 등 조건 미달" 기근 선포 안해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제대로 먹지 못해) 위가 썩어가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 사는 에만 아부 잘줌(23)은 완두콩 통조림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굶주림 속에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주민들이 기근 위기에 처했다는 유엔의 경고가 나왔지만 많은 주민이 이미 기근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8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에서는 식량을 구하려는 주민들의 또 다른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신선한 야채와 고기는 찾아보기 어렵고, 밀가루와 쌀 같은 주식은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자녀 6명과 함께 지내는 이야드 알-삽티(30)가 마지막으로 밀가루 한 봉지를 구한 것은 두 달 전이었고 그것도 3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 손에 쥐었다고 한다.
그는 피망 1개 가격이 2달러(약 2천800원)를 넘는다며 "누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딸아이가 달걀을 먹고 싶다고 했지만, 달걀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굶주림은 어린이들에게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더 큰 고통을 주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지난 23일 기준 34명이 영양실조로 숨졌으며 대부분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가자지구 중남부 데이르 알 발라에 있는 국제의료봉사단의 한 병원에 영양실조로 앙상하게 뼈를 드러낸 소녀가 누워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도했다.
지난 25일 발표된 유엔의 기아 감시 시스템인 통합식량안보단계(IPC)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약 49만5천명이 재앙적 수준의 심각한 식량 불안에 직면했다.
이는 가자지구 주민 5명 중 한 명은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경고다.
그러나 IPC는 가자지구의 기근을 선포하지는 않았다.
기근의 세 가지 조건 가운데 극심한 식량 부족에 직면한 가구의 비율은 충족하지만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어린이 비율(최소 30%), 굶주림이나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 수(매일 인구 1만명당 2명) 등 다른 두 가지 조건에는 아직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NYT는 가자지구의 많은 사람이 이런 기근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전에 죽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04년 IPC의 기근 기준 도입 이후 기근이 선포된 곳은 2011년 소말리아와 2017년 남수단 등 두 곳뿐이다. 소말리아에선 기근 선포 전에 10만명 넘게 사망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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