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제사회 고립 타개하려 원자력 이용…개도국 공략"
서방 제재 심화하자…원전 기술 내세워 '글로벌 사우스' 진출
푸틴, 북한·베트남 순방서도 원자력 협력 언급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심화하는 러시아가 원자력 발전소 건설 수주를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쟁 뒤 서방의 제재 강화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전통적으로 강한 산업 부문이자 아직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원전 사업을 이용해 개발도상국 등을 공략하고 있다는 평가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러시아는 원전 건설과 해체, 폐기물 관리 등 분야에서 전세계 계약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또한 현재에도 중국·인도·이란·이집트 등 전 세계 신규 원자로 건설의 3분의 1 이상에 러시아가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원전 사업을 통해 자국과 상대국의 관계를 묶어두는 전략을 취해왔다고 분석했다.
원전은 건설하는 데에만 10년이 걸리고, 원자로의 수명은 60년에 달하는 등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 번 계약을 체결하면 해당 국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는 점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연구원 다리아 돌지코바는 "이것은 한 국가에 러시아가 오랫동안 존재하게 되는 장기적인 약속"이라며 "실제 건설뿐 아니라 전체 생태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사업 수주를 통한 국제사회 영향력 유지 시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활성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서방의 제재가 심화하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를 공략하기 위해 원전 사업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러시아 원전 국영기업 로사톰의 알렉세이 리카체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년간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을 방문한 횟수는 그 전 6년간 이들 국가를 방문한 횟수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로사톰은 짐바브웨, 말리, 브라질 등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국가와 양해각서 20여 건을 체결했고, 가나에서는 원전 건설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FT는 "원자력 발전은 지금까지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 부문은 (러시아가 상대국과) 장기적인 정치적 유대를 형성하고 푸틴 정권을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9~20일 북한, 베트남 순방에서도 원자력과 관련한 협력이 언급됐다.
푸틴 대통령은 20일 베트남을 방문하기에 앞서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로사톰이 베트남의 원자력 산업 발전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에도 "우주, 생물, 평화적 원자력, 인공지능, 정보기술 등 여러 분야들을 포함하여 과학기술 분야에서 교류와 협조를 발전시키며 공동연구를 적극 장려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다만 북한은 핵을 군사적으로 이용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민수분야 원자력 협력을 하는 것은 곧 제재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원자력 공급망에서 러시아의 지배적인 위치를 경계하며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달 13일 러시아산 우라늄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지난해 12월 주요 7개국 중 미국·영국·프랑스·일본·캐나다 등 5개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탄력적인 글로벌 우라늄 공급시장을 구축한다고 결의했다.
그랜드 샤프스 당시 영국 에너지 장관은 이 성명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을 원자력 연료 시장에서 완전히 밀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hr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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