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위험한 브로맨스'…북한에 역대급 전략적 기회"
국제정세 변화에 밀착 가속…하노이 '노딜' 김정은에 '뜻밖의 선물'
'피상적 관계' 시각도…"러, 민감기술 北에 안줘…韓의 우크라지원 억제 차원"
북러협력 경계하는 中입김도 큰 변수…"북중러, 지저분한 삼각 관계"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18일부터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밀착이 북한에는 냉전 이후 최대 전략적 기회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임박한 16일(현지시간) '푸틴과 김정은의 위험한 브로맨스' 제하의 기사를 싣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부쩍 가까워진 북러 관계를 조명했다. 브로맨스는 남녀 간 연애를 방불케 하는 남자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의미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연서를 주고받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퇴짜를 맞은 김정은 위원장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동력이 되어 줄 무기를 위해 환심을 얻으려는 푸틴 대통령을 새로운 '절친'으로 맞이했다면서, 푸틴-김정은의 브로맨스가 지정학적인 변화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푸틴 대통령은 큰 기대를 걸고 임한 5년 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뒤 러시아에 새롭게 접근한 김정은 위원장에 당초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으나, 우크라이나 침공 초반 러시아가 예상과 달리 고전하자 태도를 바꿨다. 러시아는 무기가 필요했고, 북한이 풍부하게 갖고 있는 몇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제니 타운 연구원은 "북러 관계를 단순히 무기 거래로 생각하는 것은 실수"라고 지적한다.
북한은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을 복잡하게 만들고, 다자 기구의 힘을 빼는 것에 일조하는 등 러시아가 서방과 더 광범위한 대립을 하는 데 있어 유용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지난 3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임무를 연장하지 못한 것은 단적인 예로 꼽힌다.
북한과 협력함으로써 러시아는 무기 생산 강국이자 미국의 우방인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북한으로서도 러시아는 적시에 도착한 '뜻밖의 선물'로 평가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좌한 하노이에서의 외교 참사로 국제적 고립이 깊어지고, 안방에서도 체면을 구겼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이에 따른 경제, 문화, 안보, 기술 측면에서 양국 교류 확대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국내외에서의 이미지 개선 효과를 안겼다
수년에 걸친 제재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북한 경제가 신음하고 있던 시점에 러시아와의 무역은 사회와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
북러가 이처럼 밀착하자 급기야 미 정가에서는 북중러가 새로운 '악의 축'을 결성했다는 논의까지 이뤄지고 있다. 70여년 전 한국 전쟁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은 북한 편에 서서 미국에 맞선 역사가 있기에 일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지원이 북한의 공격성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런 우려는 현재까지는 기우로 나타났지만, 적어도 힘센 두 나라를 지지 세력으로 두고 있는 이상 북한이 미국과 직접 상대할 별다른 유혹을 느끼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북한은 또한 대북 관계를 지렛대로 중국과 러시아에 동시에 영향력을 키울 수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이를 두고 "북한에는 냉전이 끝난 이후 최대의 전략적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런 북러 밀착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우정은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안코프 국민대 교수는 "러시아와 북한의 새로운 사랑은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을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동한 이래 북한은 포탄과 미사일 등 무기로 채워진 약 1만1천개의 컨테이너를 철로와 뱃길로 러시아에 보냈다. 북한이 보낸 무기의 품질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북한 무기 덕분에 러시아는 자국산 무기 생산을 위한 시간을 벌며 우크라이나전에서 무기 부족 사태에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북한은 이 대가로 러시아에서 핵무기 설계도나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등 최첨단 군사 기술을 전수받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에게 러시아산 고급 리무진 차량을 선물할지언정, 푸틴이 핵무기나 탄도 미사일과 관련한 군사적으로 민감한 기술을 북한에 전달하지는 않았다는 게 한국 당국자들의 판단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러시아가 작년 9월 이래 북한에 보낸 컨테이너 9천개의 물량의 대부분은 식량과 연료로 채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무기 제작과 관련된 기술을 북한에 실제로 전달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지를 억제하기 위해 이런 위협을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북러 간 협력이 이어지겠지만 그 이상 지속될지는 의문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은 이와 관련, "국익을 접점으로 한 계산된 협력은 상황이 바뀌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전 이전에 러시아의 5번째 수출국이었던 한국은 러시아에 있어 북한보다 훨씬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으며, 북한은 한국과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북러 협력의 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변수로 꼽힌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국민대 교수는 "(북러는)양자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큰 형님이 베이징에서 늘 지켜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주된 관심사는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국의 우방인 한국과 중국 사이의 완충 국가로 북한을 유지시키는 것인데, 북러 간 군사협력 심화는 이런 목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한 국제 사회에 북·중·러가 단일한 연합체로 묶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이상현 원장은 "중국은 불량 국가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되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5선 취임식 후 지난 달 베이징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당초 베이징에서 바로 평양으로 이동하고 싶어 했으나 중국을 의식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중국의 이런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북중러 관계에 있어) 드러나고 있는 그림은 '전제주의 정권 간의 깔끔한 연합'(a neat authoritarian axis)이 아닌 '지저분한 삼각관계'(a messy love triangle)"라고 촌평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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