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브레니차 학살' 국제 추모일 유엔서 채택
1995년 세르비아군이 무슬림 8천여명을 집단 학살
"판도라 상자 열어"…"세르비아 아닌 가해자 겨냥"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7월 11일을 국제 추모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유엔 회원국들은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찬성 84표, 반대 19표, 기권 68표로 가결했다고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찬성표는 애초 100표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적었다. 22개국은 총회에 불참했다.
결의안은 세르비아인을 학살의 주범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르비아를 비롯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 세르비아계 반자치 스룹스카공화국(RS)은 이 결의안이 모든 세르비아인을 학살범으로 낙인찍을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결의안이 채택될 경우 발칸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 탓에 찬성국보다 많은 87개국이 기권 또는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표결을 앞두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이것은 화해나 기억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상처를 열고 완전한 정치적 혼란을 야기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총회장에서 투표를 마친 뒤 자국 국기를 몸에 두르고 결과를 지켜봤다.
결의안이 채택된 뒤에는 "세르비아인에게 낙인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오늘 이곳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 세르비아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결의안이 채택되면 분리 독립을 공식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밀로라드 도디크 RS 대통령은 표결 결과에 대해 "과반이 아니었다"며 "세르비아를 대량 학살 국가로 비난하려는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번 결의안이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정의와 진실 추구,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에 대한 '추가적인 인정'이라며 환영했다.
그는 성명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주변국 고위급 정치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역사 수정주의, 스레브레니차 학살 부인, 증오 발언을 고려할 때 이번 결의안은 더욱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르완다와 함께 결의안을 작성한 독일의 주유엔 대사인 안체 렌더체는 "희생자를 기리고 운명적인 시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결의안은 유엔의 소중한 회원국인 세르비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량 학살의 가해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옛 유고연방 내전 중이던 1995년 7월 11일을 전후해 세르비아군이 보스니아 동부 스레브레니차에서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무슬림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최소 8천372명이 잔인하게 살해됐고, 주민 2만여명이 마을에서 추방됐다.
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잔혹 행위로 꼽힌다.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V)와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제노사이드(대량학살)로 규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5년 이 사건을 '학살 범죄'로 규정, 규탄하는 결의안을 상정했으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 채택에 실패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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