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서 '바라카 신화' 재현할까…30조 원전 수주전 6월 결판
미 웨스팅하우스 '탈락'에 한국·프랑스 경합…산업장관 체코행 등 정부 힘싣기
'온 타임, 온 버짓' 앞세워 유럽 교두보 확보 시도…'지재권 분쟁' 변수 가능성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가 맞붙는 체코 원전 수주전 결과가 이르면 6월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 30조원대로 추산되는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에 원전을 수출하게 된다. 여기에 커지는 유럽 원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21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체코전력공사(CEZ)는 이달 말까지 한수원과 EDF로부터 원전 4기 건설 방안을 담은 수정 입찰서를 받는다.
체코는 당초 수도 프라하 남부 두코바니에 설비용량 1.2GW(기가와트) 이하 가압 경수로 원전 1기를 건설하기로 하고 미국 웨스팅하우스, 한수원, EDF로부터 입찰서를 받았다.
체코는 이후 탈탄소 도전을 맞아 원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 2월 두코바니에 2기, 테멜린에 2기 등 총 4기(각 1.2GW 이하)의 원전을 짓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후 한수원과 EDF에 4월까지 이 같은 변경 사항을 포함해 수정 입찰서를 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서를 제시하지 못해 수정 입찰서 요청 대상에서 배제됐고, 결국 수주전은 한수원과 EDF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CEZ는 한수원과 EDF에서 건설 비용과 방식을 포함한 입찰서를 받아 기술 평가를 거친 뒤 가격, 건설 공기 등 다양한 요인을 두루 검토한다.
CEZ는 6월 중순까지는 검토안을 체코 정부에 넘기고, 이로부터 한 달 이내에 우선협상자가 결정된다. 이 같은 시간표대로면 이르면 6월말, 늦어도 7월 중순까지 체코 원전 수주사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체코 원전 4기 사업비가 최소 3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신형 원전 국내 건설 비용은 한 세트인 2기에 10조원가량 수준이지만, 해외 원전 건설비는 임직원 해외 파견과 현지 설비·자재 조달 비용 등이 반영돼 최소 2기에 15조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독자 기술로 개발한 최신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을 바탕으로 체코 측의 요구에 따라 설비용량을 낮춘 APR-1000의 공급을 제안할 계획이다.
한국이 체코 원전을 수주하면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에 원전 수주에 성공하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8월 한수원이 이집트 엘다바에 터빈·발전기 계통 시설을 중심으로 3조원 규모의 원전 관련 사업을 수주했지만, 여기에는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체코 원전 수주는 '유럽 원전 수출 확대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유럽 지역에서는 무탄소 전원 확대 필요성에 따라 원전 건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독일이 원전을 모두 중단하는 '탈원전'을 했지만,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원전을 주요 전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체코, 폴란드, 터키, 영국, 네덜란드 등이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전을 주요한 무탄소 전원으로 보고 신규 건설 계획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 수출을 목표로 제시한 정부도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주전을 지원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체코 정부의 고위 인사들에게 한국 원전의 경제성과 신뢰성을 알리기 위해 체코를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한수원이 EDF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과 계획 기간 안에 원전을 완공하는 공기 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 6월 우선협상자 선정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한수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EDF의 원전 건설비는 한수원의 3배에 달하고 공기 지연 사례도 많다"며 "한수원은 정해진 기간 안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전을 공급하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0n, Budget)을 앞세워 수주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수원의 기술은 자사 기술을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이 체코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수원은 원전 운영 초기에는 웨스팅하우스 도움을 받았지만, 현재 수출을 추진하는 APR1400은 이후 독자 개발한 모델인 만큼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을 막아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법원은 작년 9월 '민간 기업은 소송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각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한국형 원전의 미국의 수출 통제 집행권이 미국 정부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이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물밑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안 장관은 최근 미국 방문에서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한미 원전 협력 강화를 위해 양국 정부의 건설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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