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현지 기류 변화에…K-방산 계약·금융지원 '속도'가 관건
K-9 152문 '금융계약' 및 K-9 308문·K-2 820대 등 '잔여계약' 숙제
폴란드 대표단 이번주 방한…잔여계약 등 논의결과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정부가 방산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방산업계가 폴란드와 남은 계약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정책금융 지원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말 폴란드의 정권교체 이후 수입산 무기체계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유럽연합(EU)이 유럽산 무기 비중 확대를 권고하는 등 현지 분위기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주 차관급 이상의 폴란드 대표단이 방한할 것으로 알려져 잔여 계약 등 논의에 진전이 있을지 주목된다.
◇ "마지막 서명해야 끝"…폴란드 방산계약 여전히 진행중
22일 방산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계는 지난 2022년 7월 폴란드와 무기 수출 관련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이어 바로 다음 달 총 124억달러(약 17조원) 규모의 1차 실행계획에 서명했다.
1차 계약에는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의 공급 계획이 담겼다.
방산업계는 1차 계약 뒤 1년 안에 2차 계약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수출금융 지원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
방산계약은 정부 간 계약(G2G) 성격이 짙고 수출 규모가 커 수출국에서 저리의 정책 금융·보증·보험을 지원하는 것이 관례인데,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정책금융 한도가 꽉 차 추가 수출 계약을 맺을 여력이 부족했다.
이에 정부가 시중은행들을 통해 '신디케이트론'을 제시하고, 국회가 수은법을 개정해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원을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수출 길을 텄다.
그 사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작년 12월 폴란드와 K-9 152문 등의 2차 수출계약을 맺어 잔여 계약 물량을 K-9 308문, 천무 70대 등의 규모로 줄였다.
다만 한화의 2차 계약에는 '2024년 6월까지 금융계약을 체결한다'라는 조건이 붙었는데, 신디케이트론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등의 이유로 아직 금융계약은 체결되지 않고 있다.
정책금융 금리가 시중은행 금리보다 낮게 제공되기 때문에 조 단위의 방산 계약의 경우 1% 금리 차이에 의해 수백억∼수천억원의 금융비용이 추가 되거나 경감될 수 있어 폴란드가 정책금융 사용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약 주체는 폴란드 정부와 수은 및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인데, 아직 수은에는 기획재정부의 자본금이 투입되지 않았고 무보도 구체적인 협상을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2 전차 1천대를 공급하기로 한 현대로템 역시 1차 계약에서 180대 공급을 약속한 데 이어 K-2 820대 규모의 2차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로템의 경우 정책금융 지원뿐 아니라 폴란드가 K-2 전차의 현지생산 및 기술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어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폴란드 정권교체·EU 압박에 'K-방산 계약' 흔들릴까 우려
방산업계는 폴란드 현지에서 K-방산에 대한 정책과 여론이 변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폴란드에는 작년 10월 총선으로 친EU 성향의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이로 인해 K-방산 도입을 추진한 법과정의당(PiS)이 8년 만에 집권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하면서 K-방산 도입 적정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7일 치러진 폴란드 지방선거에서는 애국보수 성향의 PiS가 34.27%를 득표하며 집권 세력인 시민연합(KO·30.59%)을 3.68&포인트 차로 앞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연립정부 파트너 등 여권의 득표율이 총 51.07%로 선거에서 승리한 것으로 판가름 났지만, 야당이 된 PiS의 존재감이 확인되면서 여권이 지난 정부, 즉 PiS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방산 수입 문제가 발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화 측의 2차 계약이 금융계약 미체결로 발효되지 않았고, 나머지 잔여 계약과 현대로템의 2차 계약도 체결되지 않은 만큼 이들 방산 계약이 폴란드 정치 이슈로 부상하며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EU 의회 선거가 오는 6월 예정돼 있어서 집권당이 내수 경제에 도움이 되는 폴란드산 자주포 도입으로 노선을 변경하며 정책 차별화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폴란드 자주포 크랩(Krab)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차체에 영국 BAE시스템즈의 포탑을 탑재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되며, 폴란드에서는 '국산 자주포'로 불린다.
여기에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발표한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에서 27개 회원국에 '오는 2030년까지 국방 조달 예산의 최소 50%를 EU 내에서 지출하라'고 권고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EU 회원국이 도입한 무기 중 수입산 비중은 80%, 역내 구입 비중은 20% 수준인 것을 지적하면서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조달을 확대하라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폴란드에 대한 2차 수출 계약이 2026년 이후 도입 분에 대한 것이어서 이 같은 EU의 조치가 폴란드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는 EDIS 발표 이후 미국의 한 방산업체가 폴란드 정부 측에 미팅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런 우려가 더 커졌다.
◇ 폴란드 대표단 방한…업계 "신속한 정책금융 지원으로 계약 진전시켜야"
이런 가운데 이번 주 폴란드 국가자산부 차관 등 방산 관련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일정이 알려지면서 방한 성과에 관심이 쏠린다.
마르친 쿨라섹 폴란드 국가자산부 차관은 지난 18일 엑스(X·옛 트위터)에 "폴란드 대표단이 이행협정과 함께 기본 협정을 완료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 정부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한 일이 거의 없다. 폴란드 정부의 대응에 한국이 정책금융 확대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섰고, 이것은 폴란드와 폴란드 방산에 큰 기회"라고 썼다.
폴란드 방산 대표단은 국내 방산·연구시설을 둘러보고 잔여 계약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한 기간 K-9 잔여 2차 금융계약 체결 및 천무 2차 계약, K-2 2차 계약 체결 등의 진전을 보는 것을 기대하는 시선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방한의 성과가 없을 경우 폴란드 정치 상황에 추가 계약 등이 더 영향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내걸고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범부처가 방산 수출 확대를 위한 총력 지원을 약속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지원으로 폴란드 방산 수출의 걸림돌이 하나둘씩 제거되는 등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도 "폴란드 및 EU 상황이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만큼 정부가 신속한 금융계약 체결을 통해 폴란드 계약을 마무리 지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방산 계약은 수출금융뿐 아니라 다양한 유인을 서로 고려하며 협의해 단계적으로 추진된다"며 "폴란드 등으로의 수출을 최대한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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