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팹 몰린 대만 강진…반도체업계, 공급망 변화가능성 촉각
TSMC, 마이크론 D램 공장 등 복구 중…국내엔 단기 영향 없어
트렌드포스 "삼성·SK, 강진 이후 D램 가격협상 중단"…시장 향방 주목
대만 지진 리스크 부각에 일각선 "K-반도체 반사이익"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시설(팹)이 밀집한 대만에 강진이 발생하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대만에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를 필두로 UMC, 파워칩, 이노룩스 등 대만 반도체 업체들뿐 아니라 미국 마이크론의 D램 생산 공장도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대만을 강타한 규모 7.2 지진 여파로 대만 내 반도체 생산시설 가동이 일부 중단됐다.
한국은 메모리, 대만은 비메모리에서 강자인 만큼 경쟁하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대만에 메모리 반도체를 30억달러어치 수출했다.
특히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생산을 대부분 TSMC를 통해서 하는데, TSMC로 보내지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생태계에서 밀접한 관계지만, 당장 이번 지진이 단기적으로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시설 조업을 일부 중단했던 TSMC는 전체 공장 설비의 80% 이상이 복구됐으며,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포함한 주요 장비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전날 밝혔다.
그러나 자동화 생산을 완전히 재개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TSMC는 예상했다.
대만 린커우와 타이중에 있는 마이크론 D램 공장에서는 웨이퍼 불량과 일부 공정 라인 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에서 HBM 등을 생산하는 마이크론은 이번 강진 영향으로 D램 가격 발표를 전격 연기했다. 지진 피해를 점검한 후 가격 논의를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대만에서 D램을 생산하지 않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만 강진 이후 D램 가격 협상을 중단했다. 두 회사는 D램 가격 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장 향방을 지켜보고 있다.
마이크론 공장의 경우 며칠 안에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HBM 생산도 지속할 것으로 트렌드포스는 예상했다.
트렌드포스는 "대만 내 웨이퍼 공장은 대부분 규모 4 수준의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있다"며 "대만 반도체 공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내진 설계가 돼 안전 점검 후 신속하게 가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가동 중단이나 지진 피해로 웨이퍼가 파손되는 사례는 있었지만, 가동 재개 후 빠르게 회복돼 생산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대만 지진을 계기로 대만에 쏠린 반도체 생산 시설을 분산할 필요성이 제기되면 한국이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이번 지진으로 대만 내 반도체 시설이 입은 치명적인 피해는 없어도 지진이 대만의 리스크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단기적으로 지진이라는 사건 자체가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며 "다만 장기적으로는 고객들이 대만이라는 지리적 위치에 대해 인식하는 리스크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에 시스템 반도체 제조 시설이 많은데 한국에서도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를 제조하고 있다"며 "고객 입장에서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제조지 자체를 분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만 지진을 계기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가 붙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현재 대만에서는 세계 파운드리 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며 특히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된 상황이다.
대만은 최신 아이폰 프로세서, AI 열풍에 수요가 급증하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글로벌 최첨단 칩의 80∼90%가량을 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대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생산기업에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TSMC 등 대만 기업들도 지역 다변화를 추진해 왔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지진에 따른 파운드리 생산 차질은 대만이 글로벌 파운드리 생산의 69%가 집중된 산업 구조, 즉 단일 공급망 리스크를 부각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 반도체 생태계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공급망 다변화의 최적 대상으로 부상해 반사이익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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