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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등 전문인력 빼가기 기승…입법·사법·행정 '채찍'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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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등 전문인력 빼가기 기승…입법·사법·행정 '채찍' 강화
전문인력 지정제 시행·벌금 15억→65억원 상향·양형기준 최고 18년 등 추진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국회 법사위 계류…"총선 후 신속 처리로 법안 폐기 막아야"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반도체 전문가 등 첨단기술 인력의 잇따른 해외 유출로 국익 훼손 우려가 커진 가운데 정부, 국회, 법원이 각각 전문인력 관리를 강화하고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조만간 첨단기술 보유자를 '전문 인력'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를 본격 시행하고,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없도록 핵심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크게 상향한다.
국회는 첨단기술 유출 시 벌금 상한을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높이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심사 중이다.

◇ 반도체공장 설계도 통째로 빼가…산업기술 유출 20년간 552건·100조원 피해
25일 산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관련 기업들은 핵심인력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공들여 키운 핵심인력들이 해외 경쟁사로 이직해 핵심기술이 함께 유출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계 업무를 담당하던 SK하이닉스 전 연구원이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이직한 것에 법원이 제동을 건 사실이 알려지며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작년에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의 설계 도면을 빼내 그대로 본뜬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세우려 한 혐의로 삼성전자 전 임원이 적발된 일도 있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NISC)가 지난 2003년부터 작년 7월까지 20년간 집계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례는 총 552건이다. 피해 규모는 1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해마다 늘고 있다.
정보기관 통계를 보면 2019년 14건이던 국가 핵심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으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적발된 기술 유출 사례 23건 중 절반 이상인 15건은 반도체 분야에서 나왔다. 이어 디스플레이, 자동차 분야가 각각 3건, 생명공학, 전기·전자 분야가 각각 1건 순이었다.
기술 탈취 수법도 과거 전문인력을 빼가는 것에서 국내에 기업을 설립, 기술인력을 고용해 기술을 취득하거나 국내기업을 인수한 뒤 인수한 기업의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등 지능화되고 있다.
이에 산업계는 연봉·인센티브 인상 등 핵심인력을 붙잡기 위한 '당근책'을 강화하는 한편,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 등 국가가 좀 더 강한 '채찍'을 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 "기술유출 막는다"…벌금 15억원→65억원, '징역 최대 18년' 양형기준 강화
정부는 지난 2008년 외국인 투자에 대한 안보 심사제도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관련 법규를 강화해 왔지만, 첨단기술 유출 범죄가 줄어들지 않자 최근 다시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있다.
산업부는 조만간 전략기술 보유자 등 전문인력 강화 조치를 시행한다.
이는 첨단전략산업법의 후속 조치로,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법이 정한 '전문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골자다.
전문인력으로 지정된 인력과는 기업들이 비밀 유출 방지 및 해외 동종 업종 이직 제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기업이 전문인력의 출입국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첨단기술 유출 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도 국회에 정부안을 올려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한 벌금 상한을 현재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로 크게 상향하고, 기술 유출 브로커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는 3배에서 5배로 확대되고, 처벌을 위한 구성요건은 '목적'에서 '고의'로 강화된다. 지금은 기술을 고의로 빼내 해외로 건넸다고 해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을 입증해야 하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의성 인정 시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향되는 벌금 상한 65억원은 미국의 500만달러(약 67억3천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벌금과 인신 구속 등 처벌 강화가 실질적으로 첨단기술 유출을 저지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회는 산업부가 제출한 법안을 비롯해 작년 4월부터 발의된 총 13건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병합 심사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진 상태다.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총선 등 정치 일정이 법안 처리의 변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총선 정국이어서 국회의 입법 기능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이지만, 21대 국회 임기는 5월 29일까지"라며 "여야가 모두 법 취지에 공감하는 만큼 총선 직후 국회가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해 법안이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되는 일이 없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원도 기술 해외 유출에 대한 양형기준 강화에 나선다.
국가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법정형은 '3년 이상 징역'이고, 해외 유출의 경우 최대 15년이지만, 양형 기준은 1년∼3년 6개월로 법정형보다 낮아 법원이 '솜방망이 처분'을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국가 핵심기술 유출 범죄에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 강화를 추진, 이달 중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등 첨단전략 산업의 경우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치열한 인력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어 우리도 이에 민첩하게 대응해 법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지나친 규제로 외국기업과의 투자·교류를 막는 일 등 부작용이 없도록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dk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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