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빤한' 러 대선 임하는 해외체류민 "저항투표냐 기권이냐"
러시아 당국, 144개국에 288개 재외 투표소 설치
"푸틴 비판 해외 거주민들, 항의 표현 방식 놓고 입장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5선에 도전하는 러시아 대선을 두고 해외 체류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항의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투표해야 한다는 쪽과 기권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4일(현지시간) 전했다.
CNN은 오는 15∼17일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해외 체류 러시아인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이들 모두는 푸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의 5선이 거의 확실하다.
총 4명의 대선 후보 중 푸틴 대통령을 제외한 3명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보리스 나데즈딘 등 반정부 성향 인사들은 후보 등록이 거부돼 출마가 좌절됐다.
이처럼 결과가 뻔한 선거이지만 해외 체류 러시아인들 상당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소에 나가서 항의와 불만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투표는 오히려 러시아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부의 말에 도움을 줄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투표가 의미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러시아 중앙 선거 위원회는 144개국에 288개 재외 투표소가 설치된다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은 전했다.
해외 체류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징집 등을 피해 고국을 떠난 수십만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 중 한명으로 현재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살고 있는 세르게이 쿨리코프는 투표는 "러시아 국내외 모두에서 항의를 표현하기 위한 유일하게 자유롭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조작을 훨씬 더 쉽게 만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 3월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한 루바 자하로프는 "이번 선거는 알맞은 후보를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후보가 선택될지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투표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용지에 표시를 부정확하게 방식으로 지지 후보가 없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쓰이는 전략이다.
자하로프는 또 지난달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을 계기로 독일에 있는 다른 반정부 유권자들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투표소에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스라엘로 이주한 안나는 당국이 '훔친 표'가 많을수록 이번 선거의 노골적인 불법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보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만약 푸틴이 이번 선거에서 95%의 득표율로 승리한다면, 이는 전체주의 선거가 될 것"이라면서 "내 표를 푸틴에게 주도록 내버려 두라. 나는 전 세계 언론 헤드라인에 '러시아에 전체주의 정권이 있다'고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러시아 외교 정책 전문 연구원 캘럼 프레이저는 러시아 인구의 10∼15%가량은 "자국의 체제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 있고 그것을 드러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이들은 자신의 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소에 가지 않는다면서 "다수 러시아인들의 진짜 의견은 그들의 머리 속에 남겨져있다"고 분석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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