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장 된 프랑스 농업박람회…농민들 "마크롱 퇴진" 항의
마크롱 등장에 호루라기 야유, 행사 개막 전 농민 대표들과 비공개 회동
일부 농민, 전시장 기물 부수기도 '아수라장'…기동대·헌병대 곳곳 배치
마크롱, 예정 없던 즉석 토론하며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지 말라"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마크롱 퇴진, 마크롱 퇴진"
지난달 트랙터 시위를 시작한 프랑스 농민들의 분노가 24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0회 국제농업박람회에서 폭발했다.
이날 오전 8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박람회가 열리는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 1홀에서 행사 개막 전 농민단체 대표들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애초 농민단체 대표를 포함해 유통, 판매 관계자들까지 한자리에 모아 공개 토론을 하려다 주요 농민단체들이 참석을 거부하자 일정을 바꿨다.
전날 늦은 오후부터 전시장 앞을 지키며 밤을 지새운 농민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전시장에 도착하자 거센 야유를 퍼붓고 호루라기를 불며 항의했다.
농민들은 보안요원들이 1홀 출입을 막아서자 숫자로 밀어붙이며 장내에 진입했다.
일부 농민은 마크롱 대통령과 농민 대표들의 회동 장소에까지 밀고 들어가려다 보안 요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결국 행사장 안에는 헬멧과 방패를 든 보안기동대와 헌병대, 경찰력이 곳곳에 배치돼 농민들의 회담장 접근을 차단했다.
성난 농민들은 행사장 내 유럽연합(EU) 홍보 간판 등 기물을 파괴했고 그때마다 농민들 사이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는 "마크롱 꺼져라"라는 외침도 들렸다.
현장에서 만난 크리스토프(54)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상식적인 규정"이라며 "지금 농업 규정을 만드는 건 전문 관료들인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농민들에게 따르라고 한다"고 성토했다.
38년간 곡물 농사를 지어온 미셸(63)씨도 "정부는 아직도 우리의 요구 사항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며 "우리는 정부의 온갖 규정을 지켜가며 농사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시위엔 청년 농부들도 대거 참석했다.
아버지와 함께 축산업을 하는 막심(31)씨는 과도한 행정 업무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일주일에 9시간 사무실에 앉아서 행정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방해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막심씨는 정부가 EU보다 과도한 규제를 적용한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농민 대표들과 1시간가량 회동을 마치고 기자들 앞에 선 마크롱 대통령은 우선 "박람회가 원활하고 차분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농민들에게 과격한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농가 지원을 위한 긴급 자금 지원, 유럽 차원의 농산물 가격 하한선 설정 추진 등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3주 안에 농민 대표들을 엘리제궁에 초대해 정부 대책들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에서 실시간 뉴스 생중계로 마크롱 대통령의 언론 브리핑을 듣고 있던 은퇴한 농민 에티엔씨는 "그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늘 잘 진행된다"고 비꼬았다.
언론 브리핑을 마친 마크롱 대통령은 농민 수십명과 예정에 없던 '스탠딩' 공개 토론을 가졌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즉석 토론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농민들 한명 한명의 불만을 들으며 때로는 "제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행사장 내 과격한 농민 시위를 겨냥해서는 "폭력과 야유가 뒤섞인 난장판"이라고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 내에서 농민 시위가 진행되면서 박람회장은 애초 예정된 9시보다 1시간 30분가량 늦은 오전 10시 30분 일반에 공개됐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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