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국의 대북 건설적 역할' 기대하는 美…전망은
1, 2차 북핵 위기 때는 미중 협력하에 비핵화 추구
3차 북핵 위기 이후 미중 패권경쟁으로 북핵 속성 변화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우리는 그들이 그 영향력을 북한 비핵화의 경로로 복귀시키는 데 사용하길 기대한다."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27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 '외교책사'간 방콕 회동 결과와 관련한 대언론 전화 브리핑에서 한 발언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물론 중국을 의미한다.
양국 정상을 보좌하는 '외교책사'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 정치국 위원(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26∼27일 태국 방콕에서 진행한 총 12시간의 회동에서 북한 문제를 집중 협의했다고 양국이 밝혔다.
그런 만큼 이 당국자 발언은 대북 영향력이 큰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진정으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중국의 대북 건설적 역할을 감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최근의 어떤 상황을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확신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발언이다. 돌이켜보면 미국과 중국 관계가 우호적이었을때 북한은 양국의 압박 속에 핵무기 개발을 노골적으로 하지 못했다.
세계 최강 미국과 북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이 있는 중국이 모두 북한 핵문제를 '국제 비확산 현안'으로 인식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정책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1차 북핵 위기가 미국의 주도하에 제네바 합의가 도출됐고, 북한은 상당 기간 핵동결을 해야 했다. 중국도 미국이 주도하는 비확산체제 강화에 적극 협력했다.
또 2000년대 불거진 2차 북핵 위기 때는 미국은 중국과 손을 잡고 북핵 6자회담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했다. 중국은 의장국을 맡아 북한 비핵화 협상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핵심은 북한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이었다.
미국과 중국 협력하에 북한과 협상을 벌인 뒤 합의를 도출하면 상당기간 북한의 '핵동결'이 이뤄지던 이런 구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이후부터는 유지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본격적인 대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맞서기 위해 중국은 전략적 가치가 큰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더이상 북한 핵문제를 과거의 비확산 이슈로 취급할 수 없었던 중국은 이 문제를 미국과의 '세력균형' 이슈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런 중국의 달라진 모습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 행위에 대한 제재 결의를 하려 할때 반대표를 던지는 데서 잘 나타난다.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에 중국은 동참하지 않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북한이 미중 패권경쟁이 초래한 구조적 공간을 잘 활용하고 '핵보유 전략국가' 노선으로 질주하게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구조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고조될수록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가 이전의 전면적 갈등에서 '관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내에서 다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이 방콕 회동에서 왕이 부장에게 북한에 대한 중국 영향력을 거론하며 역할을 당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미국 요구에 중국이 호응해 적극적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한다.
결국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변화는 미중 관계라는 큰 틀에서 정해질 수밖에에 없다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말해주는 대목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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