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악재에 금융시장 충격파 커져…주가·원화 연일 추락
두달만에 코스피 2,400선 위협…원/달러 1,340원대 치솟아
금리인하 기대 후퇴로 금리 되돌림…어닝 쇼크·지정학적 위기 고조
정부 증시 부양책도 안 먹혀…"당분간 조정국면 지속될 듯"
(서울=연합뉴스) 증권팀 = 국내 금융시장이 연초부터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난 연말 상승 랠리를 펼쳤던 코스피는 두 달 만에 2,450선을 내주고 바닥을 모르는 추락을 지속하고 있으며, 연말 안정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도 급등해 1,340원대로 올라섰다. 조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후퇴하면서 수그러들었던 시장 금리도 반등하고 있다.
격화하는 중동의 군사적 충돌과 대만 총통선거 이후 양안 갈등 우려,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 남북한의 강대강 대치 등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등 국내 간판 기업들의 '어닝쇼크'(실적 충격)까지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급랭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코스피 2,450 밑으로…원/달러 1,340원대 올라서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 61.69포인트(2.47%) 하락한 2,435.90으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21.78포인트(2.55%) 떨어진 833.05를 기록했다.
지난해 11~12월 오름세를 지속했던 코스피는 올해 들어 12거래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 모두 하락하면서 두 달 만에 다시 2,450선 아래로 내려섰다.
코스피는 지난 2일 고점(종가 2,669.81) 대비 8.76%(233.91포인트) 하락해 11~12월 상승분(17.20%·391.82포인트)의 60%가량을 반납했다.
미국 주요 주가지수들이 연초 잠시 조정을 받은 뒤 반등하는 등 양호한 흐름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의 주가 상승률은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꼴찌다.
원/달러 환율은 나흘 연속 올라 지난해 11월2일(1,342.90원) 이후 두 달여 만에 1,340원대로 올라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2.4원 오른 1,344.20원으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56.20원(4.36%) 올랐다.
시장 금리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10월 5%까지 올랐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3.80%대로 떨어졌다 다시 4.1% 근처로 상승했다.
작년 말 3.1%대였던 우리나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날 4.2bp(1bp=0.01%포인트) 올라 연 3.277%를 기록했다.
◇ 금리·달러 되돌림에 주가 낙폭 커져
연초 금융시장의 불안은 무엇보다 지난해 말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 기조 속에 주가를 끌어올리고 환율을 안정시켰던 글로벌 조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후퇴한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연초 잇달아 공개된 양호한 미국 경제지표들로 인해 올해 3월로 예상됐던 미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하반기로 늦춰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내림세를 보이던 시장 금리와 달러가 반등하고 주가의 낙폭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최근 시장 금리가 많이 하락한 게 되돌려지면서 전반적으로 투자심리가 악화되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공개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예상 밖의 실망스러운 4분기 성적표가 국내 증시의 하락 압력을 높이고 원화 약세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컨센서스)를 29% 하회했으며, LG전자[066570]와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분기 영업이익도 전망치를 각각 37%, 43% 밑돌았다.
김형렬 교보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 기대가 조금씩 약해지면서 시장 에너지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실적이 뒷받침돼도 시장이 버틸까 말까인데 삼성전자 어닝쇼크가 났다"며 "그런데도 올해는 좋아지겠지 하는 편향적인 반응이 누적됐던 것이 오늘과 같은 급락을 일으킨다고 본다"고 말했다.
◇ 지정학적 위기에 국내 금융시장 충격파 커
조기 금리인하 기대가 후퇴한 데 따른 영향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 외에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위험자산에 대한 경계감이 커진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명지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하락은 무엇보다 환율 영향이 크다"며 "최근 중동에서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기에 대만 총통 선거 이후 양안 관계 갈등 전망, 북한 김정은의 대한민국 주적 발언, 여기에 미국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 등이 환율을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특히 지정학적 위기에 취약한데 환율까지 치솟아 외국인 한국 주식을 팔게 만드는 상황"이라며 "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폴리코노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대만 총통선거 이후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고 미국 경선을 지켜보며 우려감이 유입되고 있다"며 "이에 더해 지난해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에 대한 기대가 과했기에 기대심리가 정상화되면서 코스피가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 외에 국내 대북 리스크도 최근 확산되는 모습"이라며 "당분간은 위험자산에 대한 비중 확대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증시 부양책도 안 먹혀…"당분간 조정국면 지속될 듯"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를 과감하게 개혁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연초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밝혔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추진과 같은 맥락으로 적극적인 증시 부양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증시 부양책은 이날 증시에선 약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뭔 기술을 걸어도 먹히지 않는다는 영화 대사가 머릿속에 맴돈다"며 "정부가 금투세 폐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비과세 한도 확대를 추진한다는 호재성 재료가 등장했지만 다른 어느 나라 증시보다 국내 증시 참여자들의 투자심리가 많이 약화돼 호재성 재료에도 큰 반응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현기 연구원은 "주가가 조정받을 때는 투자 심리가 불안해져 수급 관련 정책은 잘 작동하지 않는 경향 있다"며 "그래서 오늘 증시 부양책 발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뚜렷한 모멘텀이 없어 당분간 증시의 조정 국면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시장 반등의 계기가 필요하지만 당분간 코스피는 답답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증시 급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미국 금리 상승에 트럼프의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 승리, 장중 발표된 중국 경제지표 부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특별한 모멘텀이 없어 1월까지는 증시 조정이 지속되면서 코스피 2,300 후반이나 2,400 초반에서 바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에 대해 "지난해 10월과 같이 1,350원을 넘어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동시에 단기적으로 추세적 하락세로 전환하기도 힘든 국면"이라며 1,300~1,350원대 등락 장세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웅 임은진 배영경 송은경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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