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대만 대선, 한국에도 영향 불가피…한중 외교 시험대"
"라이칭더, 반도체 매개로 국제사회 손잡고 中에 대항…한국과 협력강화 나설 가능성 커"
"미중관계 긴장 고조에다 한중 관계 불협화음 우려도…中 자극 않고 국익 도모해야"
"라이칭더 당선 요인, 야권 단일화 실패·대만 정체성 변화·中 압박 역풍 작용"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한국의 대만 문제 전문가들은 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선거(대선) 결과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와 미중 관계의 긴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중 대리전' 성격으로 치러진 대선에서 친미 노선 강경 독립파인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양안 관계는 물론 미중 갈등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또 이번 대만 대선 결과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불가피한 만큼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라이칭더는 중국과 각을 세우는 입장인 데다 '하나의 중국' 원칙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박이 강화될 것"이라면서 결국은 미·중 간의 갈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민진당 라이칭더 정부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할 확대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의 강경 대응 수위는 높아질 공산이 크다는 전문가들 예상도 나왔다.
실제로 라이 당선인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대만이 전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며 "중화민국(대만)이 계속해서 국제 민주주의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연합뉴스에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한다면 중국은 기본적으로 대만을 자기들에 속한 '하나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푸시(압박)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다만 라이칭더 정부가 중국은 물론 미국도 '현상 변경 반대'라는 기조에서 반대하고 있는 '대만 독립 선포'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양안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 지역연구센터장은 "라이칭더는 자신은 '대만 독립을 충실히 이행하는 실무자'라고 얘기했다가 대선 막바지에는 말을 바꿔 '현상 유지'로 돌아섰다"면서 '현상 유지' 정책이 유지된다면 양안 관계에 당장 큰 변화는 없이 지금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가 인터뷰한 국내 대만 전문가들은 이번 대만 대선 결과가 우리나라와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특히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향후 미국, 중국, 대만 등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공급망 재편 문제 등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준영 교수는 "라이칭더 당선인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반도체 역량을 갖고 국제사회를 끌어들여서 중국과 대항하려는 생각을 당연히 할 것"이라며 민주동맹을 기치로, 레버리지를 높일 수 있는 한국과의 협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선거 직전 한국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선되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며 대만과 한국이 민주·자유·인권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 공급망 형성을 위한 안보 대화를 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강 교수는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해 "한국과 대만이 힘을 합친다면 우리에게 더 공간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중 관계에는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며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국익을 강화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 정부는 그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확고한 바탕 위에서 대만과는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정재흥 센터장도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TSMC의 미국 투자가 확대되고, 미국이 한미일 협력에 대만을 포괄하는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제정세 변화와 공급망 재편 움직임 등에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만 선거 이후 오는 11월에 진행되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중 관계와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가 크게 요동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양갑용 센터장은 "차기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공급망 문제라든지 TSMC의 미국 투자 등에 더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준영 교수도 "미국은 11월 대선까지 강경 위주의 대중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고 중국은 경제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에 관망하는 형태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대선 결과가 향후 미중관계 추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라이칭더의 승리 요인에 대해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대만인들의 정체성 변화, 중국의 압박 역효과 등을 짚었다.
강 교수는 "8년을 집권한 민진당 정권이 균형 심리가 강한 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또다시 받은 것은 대만 야권의 적전 분열이 첫번째 이유라면서 "득표율로 보면 3자 대결 구도가 아니었으면 라이칭더가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했다.
양 센터장은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고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 관련 요인이 가장 컸다"고 분석하면서 경제 문제와 취업, 부동산 등 민생문제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도 "1949년에 대만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벌써 75세가 됐다"면서 중국과 차별화된 대만 정체성이 고착화 한 것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정 센터장은 "친미 노선을 추구한 차이잉원 집권 8년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긍정적 평가가 주된 요인"이라면서 "대만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인 압박이 역효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j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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