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 논란끝 국제법정 출두 앞둔 이스라엘…전쟁 멈출까
국제법 전문가 "공판후 몇주내 전쟁 중지 임시 명령 나올 수도"
"이스라엘, 강제성 없는 ICJ 명령 불복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이번 주 국제 법정에 서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학살(genocide)을 벌이고 있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제소하면서다. 일각에선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몇주 내에 전쟁행위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ICJ에서는 오는 11∼12일 해당 사건과 관련한 첫 심리가 열린다.
1948년 '집단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이 유엔에서 채택된 이래 이스라엘이 이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해당 협약은 집단학살을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 행해진 행위'로 규정한다.
남아공은 ICJ에 제출한 84쪽 분량의 소장에서 하마스의 근거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벌인 행위가 '집단학살'에 해당한다면서 "팔레스타인 국가, 집단의 본질적 부분을 파괴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각료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쏟아낸 강경 발언을 8쪽에 걸쳐 소개하기도 했다.
주목할 부분은 남아공이 이스라엘에 전쟁을 멈추라는 임시 조치를 명령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는 점이다.
남아공은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가 더는 극심하고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인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해 약 1천200명의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을 학살하고 240여명을 납치해 인질로 삼았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말살을 공언하며 반격에 나섰고, 이후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선 2만3천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이들 대다수는 미성년자와 여성이라는 게 팔레스타인 측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남아공의 제소에 격하게 반발하면서도 재판을 통해 결백함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실제로 집단학살을 저지른 건 하마스라고 반박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비타협적 무장투쟁 노선을 고수하며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를 벌여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 최소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남아공과 우리를 비방하는 여타 국가들은 정작 시리아와 예멘 등지에서 수백만이 죽고 난민이 됐을 때는 어디에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스라엘 정부의 에일론 레비 대변인은 아예 남아공이 "우리 국민에 대한 하마스의 집단학살 작전에 범죄적으로 공모했다"고 규탄했다.
그는 남아공이 2015년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를 열면서 다르푸르 학살 주범인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을 무시한 것을 지적하면서 남아공이 이중잣대를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아공은 작년 8월 자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전범행위로 역시 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애매한 행보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가들은 그런 상황들과는 별개로 ICJ가 남아공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스라엘에 전쟁 중단을 명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영국 출신의 국제법 전문가 대니얼 매코버는 본안 판결과 달리 일종의 가처분인 임시조치 명령을 끌어내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고 내다봤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에서의 인종청소 행위와 관련한 ICJ 재판에 참여했던 미국 인권 변호사 프랜시스 보일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남아공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모든 집단학살 행위를 멈추라는 명령을 받아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보일은 본인의 경험에 비춰볼 때 첫 공판 이후 몇주 이내에 임시조처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ICJ 명령에는 강제성이 없는데다 이스라엘이 이를 따를지도 미지수다.
텔아비브 대학의 국제법 전문가 엘리아브 리플리히 교수는 전쟁을 멈추라는 임시조처 명령이 나온다면 이스라엘은 ICJ 재판부 구성원 일부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CNN에 따르면 현재 ICJ 재판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슬로바키아, 모로코, 레바논, 인도, 프랑스, 소말리아, 자메이카, 일본, 독일, 호주, 우간다, 브라질 등 15개국 출신 판사로 구성돼 있다.
내달에는 4명이 임기만료로 교체되며 이중 한 명은 남아공 출신이다. 이에 더해 당사국인 이스라엘과 남아공 출신의 임시판사가 각각 한 명씩 추가돼 전체 17명으로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임시명령에 불복한다면 ICJ의 권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ICJ는 2022년 3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도 군사작전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무시된 바 있다.
ICJ가 남아공의 손을 들어준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국 정부에 가해지는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 최소화를 요구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마스 말살을 위해 전쟁을 지속하는 것 자체는 지지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어서다.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다른 서방 국가들에서도 이와 관련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9일 의회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국제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ICJ의 판결까지는 수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ICJ의 모든 판결은 최종적이며 항소는 허용되지 않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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