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등 돌린 사우디 민심…바이든 '중동 구상' 난감
사우디 국민 96% "아랍권 국가들, 이스라엘과 관계 끊어야"
미국 주도 이스라엘-아랍권 관계 개선 노력 '물거품' 위기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민심이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아랍권 국가들의 '이스라엘 절교'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중동 구상에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22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INEP)가 지난 달 14일부터 이달 6일까지 사우디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96%가 아랍권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답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응답자는 40%로, 전쟁 발발 이전 여론 조사에서 10% 가량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국가 파괴 요구를 멈추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전쟁 전까지 미국 정부 관리들과 정책 분석가들은 사우디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라는 대의에 관심이 적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도 더 잘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이후 사우디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여론이 모든 연령에 걸쳐 커지고 있다.
하마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사우디에서 응답자 40%가 하마스에 긍정적 태도를 보인 이번 여론 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고 NYT는 짚었다.
특히 이같은 기류는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해온 미국의 노력에 반대되는 것이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 기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9월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한 TV 인터뷰에서 사우디와 미국 정부 관리들이 이스라엘 건립 이후 최초로 사우디가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는 내용의 합의에 "매일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에 미국의 사우디 안보 보장과 민간 핵기술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이스라엘을 향한 아랍권의 민심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이 같은 합의 시도에는 모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번 여론 조사에 따르면 사우디 국민 95%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민간인 1천200여명을 죽였다는 내용을 믿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권 국가에서는 이스라엘 민간인 피해가 이스라엘 정부가 만들어낸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으며 그보다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또 응답자 87%는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이 나약하고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언젠가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답했으며, 단지 5%만이 사우디가 전 세계의 유대인을 더 존중하고 그들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응답자의 약 4분의3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적 접근보다는 외교적 해결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wisefoo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