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밀레이 대통령 취임 "최악정부 물려받아…개혁만이 해법"(종합)
"연 1만5천% 인플레 위험 직면…실패·분쟁 딛고 조국 다시 일으켜야"
달러화 도입 등 '과격공약' 속도조절 시사…젤렌스키와 첫 정상회담
규정 고쳐 비서실장에 여동생 임명…장관 임명식도 전례없이 비공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하비에르 밀레이(53)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갖고 4년 임기를 시작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연방의회에서 전통에 따라 퇴임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으로부터 어깨띠를 넘겨받은 뒤 취임선서를 하고 공식적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 자리에선 빅토리아 비야루엘 부통령도 별도로 취임 선서를 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선서 후에 연설 없이 퇴장했다. 연방 의회에서 취임 선서 후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은 대통령은 지난 1983년 민주화 이후 밀레이 대통령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밀레이 대통령은 의회 앞 광장으로 나와 미리 준비된 연단에서 취임연설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 더 험난한 어려움이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강력한 개혁을 통한 경제난 해결의지를 천명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국민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며 "우리는 수십 년간의 실패와 내분, 무의미한 분쟁을 묻어버리고, 폐허처럼 변한 사랑하는 조국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보다 더 나쁜 유산을 받아 든 정부는 없다"고 단언한 뒤 "재정 및 수출 쌍둥이 흑자를 자랑하던 전 정부는 오늘날 우리에게 국내총생산(GDP) 17%에 달하는 쌍둥이 적자를 남겼다"면서 "아르헨티나는 현재 연간 1만5천%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겪을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도 경고했다.
순간 술렁이는 청중을 향해 밀레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초인플레이션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것"이라면서 "GDP 5%에 달하는 공공 부문 재정 조정을 비롯해 강력한 경제난 극복 정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약속하며 "국가를 전리품으로 간주하여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모델은 종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비바 라 리베르타드, 카라호"(자유 만세, 빌어먹을)이라는 특유의 구호를 3번 외치며 시민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리베르타드는 그의 소속정당(자유전진당) 약칭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에는 '정권 실세'로 꼽히는 대통령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와 1기 내각(수석 장관 및 9개 부처 장관) 및 참모진 등도 함께 했다.
취임식 이후 마요대로를 따라 카퍼레이드를 한 밀레이 대통령은 대통령궁(카사 로사다)에 첫발을 들였다. 그의 곁에는 카리나가 함께 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출신으로 극우 성향 정치인으로 꼽히는 밀레이 대통령은 하원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지 2년여만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지난 8월 대통령선거 예비선거(PASO)에서 '깜짝 1위'로 돌풍을 일으킨 뒤 10월 본선에서 2위에 올랐고, 지난 달 19일 결선투표에서 좌파 집권당의 세르히오 마사(52) 전 경제장관을 11.3% 포인트 차로 따돌리는 역전극을 펼치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는 선거 과정에 '전기톱 퍼포먼스 유세'를 벌이는 등 돌출적인 언행으로 국가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과시하고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를 시도했으며, 중앙은행 폐쇄 및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달러화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과격한'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 속에 첫 내각을 온건파로 꾸리며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화 도입 등 주요 공약 이행의 속도 조절을 예고했다.
다만, 18개의 기존 정부 부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안은 이미 시행했고, 주요 공기업 민영화는 곧바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취임 행사 직후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 부처 장관을 비공개로 임명했다.
현지 매체들은 "일정 공지 없이, 언론에 공개하지도 않은 채 장관 임명식을 진행한 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그는 여동생 카리나를 비서실장에 전격 임명했다.
일간 클라린은 "배우자를 포함한 친족을 대통령실과 부처를 포함한 공직에 들일 수는 없다는 기존 규정을 대통령실에서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현지 매체들조차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을 비롯한 남미 주변국 정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등이 참석해 밀레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한국에서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경축 특사로 자리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또 자신의 취임식에 참석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첫 정상 회담을 하고, 연대와 지지 의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퇴임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부통령(2007∼2015년 대통령 재임)은 취임 행사 참석 과정에서 자신을 향해 야유하는 시민들을 향해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욕설을 했다고 현지 일간지인 라나시온은 보도했다. 이 모습은 동영상으로도 촬영됐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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