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대란 독일 내년 24조 '구멍' 어쩌나…복지축소 vs 위기선언
신호등 연립정부 협의 막바지…야당 부채적용 장치 제외 반대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위헌 결정으로 사상 초유의 예산 대란을 맞은 독일이 내년에 부족하게 된 24조원을 어떻게 메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소속된 집권 사회민주당(SPD)이 내년에도 재차 위기 상황에 따른 부채 제동장치 적용 제외를 추진하는 가운데 최대 야당인 기독민주당(CDU)은 사회복지 예산을 축소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숄츠 총리와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재무장관 등 신호등 연립정부 수장들은 4일(현지시간) 밤 내년 예산안에 대한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하베크 부총리는 숄츠 총리의 요청으로 협의에 진전을 이루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을 취소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전날 ARD방송에 출연해 "나는 우리가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길 위에 서 있다고 아주 낙관한다"면서 "숄츠 총리와 린트너 장관과 함께 위헌 결정이 난 예산 중 미룰 수 있는 것, 아니면 더는 필요 없거나 할 수 없는 것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5일 독일 정부의 올해와 내년 예산이 헌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2021년 연립정부가 수립되면서 코로나19 대응에 쓰이지 않은 600억 유로(86조원)를 기후변환기금(KTF)으로 전용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규사업에 투입하기로 한 것은 위헌이라며 KTF를 위한 국채 발행 허가를 무력화했다.
독일 내각은 이에 448억유로(64조원) 규모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 급한 불을 껐지만, 내년 예산안에서 여전히 170억 유로(24조원)가 구멍이 난 상황이다.
독일 정부는 연내 연방의회에서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내각 회의가 열리는 6일(현지시간)까지 내년 예산안을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서는 내년에도 헌법에 규정된 부채 제동장치 적용 제외를 결의해야 할지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사회복지 지출 축소와 증세 등도 거론되고 있다.
독일 헌법에 규정된 부채 제동장치는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0.35%까지만 새로 부채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다만, 자연재해나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는 연방의회에서 적용 제외를 결의할 수 있다.
사민당은 내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국한해 제한적 위기 상황을 선언하고, 이에 따른 난민 대응 비용과 인도적 지원, 우크라이나 재건 등에 드는 예산에 대해 부채 제동장치 적용 제외 결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비용은 200억~300억유로(28조~42조5천억원)가량으로 추정되며 부채로 조달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신호등 연립정부 구성 당시 연정 협약에서 제외했던 증세도 다시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게 사민당의 입장이다.
신호등 연립정부 내부에서도 자민당은 부채 제동장치 적용 제외보다는 사회복지예산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민당은 증세도 '레드라인'으로 보고 있다.
최대 야당인 기민당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ARD 방송에 "부채 제동장치는 헌법에 규정돼 있고,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면서 "현재는 우리가 더 많은 빚을 져야 할 정도의 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기존 부채만으로도 내년에 400억유로(56조6천억원)의 이자를 내야 한다"면서 "이는 헤센주 예산 규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우리나라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에 해당하는 시민수당 인상을 포기하자고 제안했다. 물가 급등 등에 대한 대응으로 시민수당은 내년부터 12% 인상될 예정이다.
자스키아 에스켄 사민당 대표는 "시민수당 인상 취소와 같은 사안을 두고 협의가 이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지원을 절약하기보다는 강자들의 참여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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