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도 없이 구금…팔 수감자 석방에 이스라엘 사법체계 또 논란
석방자 180명 중 128명 기소도 없이 가둬…점령 지역 팔 주민에 군법 적용
행정구류 제도로 무기한 구금 허용…팔 어린이 매년 최대 1천명씩 구금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일시 휴전을 통해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들을 석방한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사법 체계가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재판도 없이 무기한 구금하고 어린이도 무차별적으로 체포한 사실이 풀려난 수감자를 통해 재조명받게 된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은 29일(현지시간) 지난 7개월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돼 있다 이번 휴전 기간 풀려난 여성 파티마 샤힌(33)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스라엘 사법당국은 초기 수사 결과 샤힌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으나, 실제로 샤힌은 어떤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구금 기간 샤힌은 변호인 및 가족과의 접견도 차단당했다.
샤힌은 "그들은 내가 칼로 사람을 찔렀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그들이 나를 총으로 쐈고, 2발이 척추에 맞았다. 나는 부분 마비로 인해 다리에 감각이 없고 일어설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휴전 기간 이스라엘 감옥에서 풀려난 팔레스타인 수감자 180명 중 128명이 샤힌처럼 기소되지 않았고 법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구금된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법당국은 석방된 수감자들이 대부분 살인미수나 폭발물 투척, 폭행 등 중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이들 대부분이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사실이 이스라엘 당국의 자료로 확인됐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서는 기소나 재판 없이도 무기한 구금이 가능하도록 한 이스라엘 군사 사법제도 탓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서안지구를 점령한 뒤 해당 지역의 자국민에 대해선 일반 법 체계를 적용한 반면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선 군법 체계를 적용했다.
이스라엘군(IDF) 국제법 부서의 법률 고문은 이 같은 이중 사법 체계에 대해 자국 법 체계를 서안지구에 적용하는 것을 불허하는 국제법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은 "법원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인을 무기한 구금하기 위해 사용되는 행정 구류 제도의 문제점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스라엘 사법당국은 이 제도를 통해 기소나 재판 없이 보안상 이유로 용의자에 대한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고 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은 증거가 활용되거나, 실제로 벌어진 범죄가 아니라 범죄를 계획했다는 혐의만으로 구금되는 사례도 벌어진다고 CNN은 전했다.
지난 5월 옥중 단식 투쟁 끝에 숨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의 고위 간부 카데르 아드난도 행정 구류 제도에 따라 유죄 선고도 없이 8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베첼렘에 따르면 9월 기준 행정 구류 제도로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1천300명 중 절반가량이 6개월 이상 장기 구금 상태다.
IDF 법률 고문은 행정 구류 제도가 국제법 체계에 위배되지 않는다면서도 때로는 제도가 가혹한 방식으로 집행될 가능성은 인정했다.
18세 미만 미성년자 및 어린이에 대한 구금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 풀려난 수감자 대부분이 16~18세 청소년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석방 대상자 명단에는 14세 수감자 5명, 15세 수감자 7명도 포함됐다.
9월 기준 보안상 이유로 이스라엘에 수감 중인 미성년자는 146명인 것으로 베첼렘은 파악하고 있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매년 500~1천 명의 어린이가 이스라엘군에 구금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는 구타를 당했으며, 70%는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69%는 심문 중 알몸 수색을 당했다고 답했다.
jo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