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솔 2.0 준비해야"…'44년 LG맨' 권영수의 '아름다운 퇴진'
17년간 주요계열사 CEO 두루 맡아…LG엔솔 수주잔고 500조원까지 늘려
일각서 '포스코 회장설'도…LG그룹 '세대교체' 가속화하나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44년 LG맨'이자 그룹 2인자로 통했던 권영수(66)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LG에너지솔루션의 도약을 위해 '용퇴'(勇退)를 결정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권 부회장은 1979년 LG전자에 입사한 이후 44년간 LG그룹에 몸담았다.
이 중 17년간 LG디스플레이 사장, LG화학 사장(전지사업본부장), LG유플러스 대표이사,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LG그룹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를 두루 맡으며 LG가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LG전자 재직 시절 금융·경영지원 담당 상무보, 재경팀장,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거쳐 '재무통'으로도 불려 왔다.
특히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에는 '그룹 2인자'격인 ㈜LG COO를 맡아 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구광모호(號)'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부회장은 2021년 11월 LG에너지솔루션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LG에너지솔루션을 국내 시총 2위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취임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 신뢰 구축과 대규모 생산 기반 마련 등의 과제가 산적했으나, 권 부회장은 LG그룹 내에서 다수의 글로벌 사업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 배터리 산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당면과제들을 풀어왔다.
또 GM, 혼다, 도요타, 현대차, 스텔란티스 등 전 세계 최고의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법인(JV) 및 공급 계약을 연이어 발표하며 취임 당시 200조원 안팎이던 수주 잔고 규모를 500조원까지 늘렸다.
제품 경쟁력 차별화, 스마트팩토리 기반 구축, 안정적 원재료 확보를 위한 공급망관리(SCM) 체계 구축, 차세대 전지 기술 개발 등도 적극 추진했다.
이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권 부회장 취임 후 사실상 모든 분기 최대 매출 및 영업이익 기록을 경신하는 등 꾸준한 성장을 이어왔다.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을 글로벌 최고의 배터리 기업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한국 배터리산업의 위상도 한 단계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월부터는 한국배터리산업협회장직도 맡아 왔다.
권 부회장은 '이청득심'(以聽得心·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 리더십을 통해 조직문화 혁신에도 힘썼다.
취임 직후 구성원과 직접 소통하는 채널 '엔톡'(Entalk)을 개설하는 등 '가장 중요한 고객은 임직원이고, 훌륭한 조직문화는 강한 실행력의 출발점'이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임직원과 소통하고 사내 복지·제도를 개선했다.
오창에너지플랜트로의 명칭 변경과 오창 어린이집 설치, 승강기 점자 패드 등도 '엔톡 경영'의 결과물이다.
격의 없고 진솔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님' 호칭 제도를 정착시켰다. 또 모든 답은 고객과 현장에 있다며 주 1∼2회 국내외 사업장을 찾아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권 부회장은 LG에너지솔루션의 '더 큰 도약'을 위해 퇴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사업장 투자, 미래고객 확보 등 '엔솔 1.0'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놓은 만큼 이제는 강력한 실행을 통해 '엔솔 2.0'을 준비하는 최적의 시점이기에 새로운 인재가 사령탑을 이어받을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권 부회장은 이날 이사회 이후 "내년 글로벌 배터리 산업은 중요한 전환기를 맞을 것이며 LG에너지솔루션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미래에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발 빠른 실행력을 갖춘 젊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LG에너지솔루션이 전했다.
권 부회장은 "신임 대표이사가 LG에너지솔루션이 30년을 거쳐 쌓아온 도전과 혁신 역량,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밑거름 삼아 더 큰 도약을 해주길 기대하며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 최고의 배터리 회사가 되는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LG그룹에서 일하는 동안 단 하나의 목표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며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철저히 고민하고, '1등 정신'으로 무장한 강한 실행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회고하며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과 구광모 회장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권 부회장의 '포스코 회장 부임설'이 제기됐으나, 이를 두고 권 부회장은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한편, 권 부회장의 용퇴로 LG그룹의 세대교체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당시 6인 체제였던 부회장단은 이날 권 부회장의 사퇴로 권봉석 ㈜LG 부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2인만 남게 됐다. 이들 2명의 부회장은 유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작년에는 2005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끌던 '최장수 CEO' 차석용 부회장이 용퇴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부회장 승진자가 나올지도 관심사다. 재계에서는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이노텍 사장 등이 부회장 승진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LG그룹은 이날부터 오는 24일까지 계열사별로 순차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임원 인사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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