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어느 환자를 살려야 하나…가자 의사의 힘든 선택
이스라엘 봉쇄·공습에 의료 붕괴…"생존 가능성 높은 사람 골라 인공호흡기"
더위에 상처 곪고 요오드로 소독·휴대전화 빛으로 수술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하루하루가 누가 죽고 누가 사는 것 사이의 선택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공습으로 가자지구 의료 상황이 붕괴 직전이다. 전기와 식수, 의약품 등의 공급이 끊기면서 마취약도, 상처를 씻을 깨끗한 물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의료진은 어느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줄지, 아니면 또 어떤 치료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가자지구 병원 의료진과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참혹한 모습을 생생히 전했다.
4개 병원 의사들은 깨끗한 물과 요오드 부족으로 환자들의 상처가 더러워지고 구더기가 환자들의 상처 난 살을 갉아 먹고 있다고 전했다. 물이 없어 환자들의 상처를 씻기거나 병원 침대 시트를 갈 수도 없다. 일부 병원에서는 심정지 환자에게 인공호흡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의료진이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환자를 선택해 진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중상자 중 병원 침대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뇌수술 등 수술 시 인공호흡기나 마취가 필요한 경우는 더 적다고 한다.
가자 남부 칸 유니스에 있는 나세르 병원의 모하메드 칸딜은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결정, 인공호흡기를 달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며 "쉬운 결정은 아니다. 죄책감도 크고 도덕적으로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칸딜은 "우리가 이러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우리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안전하고 지속적인 의료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병원 2곳의 의사들은 에어컨을 켤 수 없어 더위에 환자들 상처가 곪을 정도라고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료는 수술실을 밝히는 데 쓰인다.
휴대전화 손전등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요오드를 대신해 때때로 식초로 상처를 소독하기도 한다.
음식도 부족해 의료진은 병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하루 한 끼만 먹고, 피란민들과 함께 복도에서 잠을 잔다.
병원은 임시 고아원이 되기도 한다. 가족 전체가 죽었거나, 부모가 병원에서 숨지는 것을 지켜본 아이들을 친척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의료진은 아이들을 돌본다.
가자 중부 알 아크사 병원의 부원장 바셈 알 나자르는 "우리 팀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다"며 "어떤 의사들은 일주일 내내 병원에 있었다. 가족 중 일부는 죽거나 다쳐 병원으로 이송했다. 일부 의사는 집에 가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알 시파 병원의 한 직원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끝나가고 있다"며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기는 가장 위급한 경우에만 쓸 수 있게 제한돼 있고 식량도 부족하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는 알 쿠즈 병원의 연료가 48시간 이내에 고갈될 것이라고 밝혔고, 알 아우다 병원 관계자들은 곧 병원이 폐쇄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은 보도했다.
가자지구에 약 한달간 머물다 최근 고국에 돌아온 영국 의사는 현장에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표현했다.
지난 2일 귀국한 압둘 하마드 박사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현장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며 정기 신장투석이 필요한 1천200명 중 절반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자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수행하는 영국 자선단체 회장인 압둘 하마스 박사는 지난달 6일 가자를 방문, 3일간 4건의 수술을 한 후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전쟁이 길어지며 약 한 달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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