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팬데믹! 가짜뉴스] ① 우크라·중동戰…전쟁판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네타냐후 긴급이송·아이업은 가자 탈출 사진' 다 가짜…김정은·호날두까지 '등장'
전황 교란용 심리전 수단 활용…'눈속임'에 넘어가 언론에 그대로 보도된 경우도
우크라戰, 러시아발 음모론에 서방 비상…전세계 언론, 전쟁 가짜뉴스 대응 부심
[편집자주 =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각종 피해도 양산되고 있습니다. 급속도로 발달한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를 활용한 '진짜 같은' 가짜뉴스들이 SNS 등 정보 유통 생태계를 어지럽히면서 선거를 앞둔 각국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허위 정보가 선거 결과를 좌우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러시아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간 전쟁에 이르기까지 가짜뉴스는 전쟁판을 교란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까지 떠올랐습니다. 연합뉴스는 전세계 특파원과 국내 취재망을 가동,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가짜뉴스 피해실태를 점검하고 각국의 대응 및 대책 등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연재합니다.]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난했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었다.'
지난달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소셜미디어를 뒤덮었던 동영상과 사진 등 게시물이다.
얼핏 보면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눈길을 끄는 자극적인 내용이 담겨있지만, 모두 '가짜뉴스'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국면에서도 허위 정보에 기반한 가짜뉴스가 인터넷 공간 등에서 범람하고 있다.
급속도로 발달한 인공지능(AI) 기술 덕에 사람의 눈을 교묘히 속이는 시각 콘텐츠까지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정보를 소비하는 개인이 뉴스의 진위를 판단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가짜뉴스가 상대방을 비방하고 전황을 교란, 자신들 쪽으로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전쟁판을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 선전용 부정확한 정보 고의 제작…하마스 채널 차단되기도
10일(현지시간) 현재도 인터넷에서는 이번 전쟁에 대한 거짓 정보가 쉽게 검색된다.
가장 많은 사람을 현혹했던 것은 하마스의 공습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는 뉴스였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9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해당 게시물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사진과 함께 병원 이름, '예루살렘 포스트'라는 현지 매체 출처까지 명기돼 보는 이들이 공신력 있는 뉴스라고 감쪽 같이 속기 십상이었다.
순식간에 100만명이 조회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며 퍼져 나갔지만, 가짜뉴스로 판명 났다.
앞서 지난 8일 X의 한 계정에 오른 하마스가 이스라엘군(IDF) 헬리콥터를 격추했다는 영상은 비디오게임 '아르마3'에서 연출된 장면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한때 화제가 됐다.
한 네티즌은 김 위원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언급하며 "바이든 행정부 아래에서 매년 분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는 자막이 달린 영상을 올렸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다음 선거 때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며 "나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했다는 설명이 붙었지만, 사실은 2020년 조선노동당 창건 행사 때 찍힌 연설을 짜깁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월드컵 때 모로코 선수가 깃발을 든 모습의 사진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었다"며 공유하는 경우, 갓난아이가 가자지구 건물 잔해에 파묻혀 울부짖는 AI 생성 이미지를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1일 AFP 통신은 소셜미디어를 휩쓴 한 사진의 진상을 파헤쳤다. 지난달 21일부터 퍼지기 시작한 이 사진은 한 아이가 다섯 아이를 등에 업거나 손에 잡고 가자지구의 건물 잔해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언뜻 가자지구의 처참한 실상을 전하는 듯한 이 이미지는 "가자가 공격받는다"(#Gaza_under_attack),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 해시태그가 붙어 확산했다.
하지만 AFP는 전문가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하니 파리드 교수를 인용, 팔과 다리가 불규칙하게 묘사된 것을 지적하며 "이는 거의 확실히 AI로 생성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AFP는 언론 매체 보도로는 해당 사진이 촬영되거나 발행된 것을 찾을 수 없었다며 "잘못된 정보"라고 지적했다.
레거시 미디어가 부정확한 정보를 확인 없이 전했다가 체면을 구기기도 한다.
최근 하마스의 무장 조직 알카삼 여단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아기들을 참수했다"는 이스라엘 채널i24 방송의 보도가 다른 외신에 다수 인용됐는데, 이에 대해 IDF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며 일축했다.
이러한 허위정보는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분쟁 중인 각 진영에서 자신을 옹호하고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선전) 의도로 정교하게 꾸며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AP통신은 이런 가짜뉴스를 가리켜 "전 세계인이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꼬집었고, 유로뉴스는 "AI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분쟁 주체가 고의적으로 불확실하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를 확산시키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25일 텔레그램 안드로이드 버전에서 하마스와 알카삼 여단의 계정 등에 대한 일반 사용자의 접근이 뒤늦게 차단됐다. 가짜뉴스와 함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사진과 영상 등이 대거 게시되면서 하마스의 선전 도구로 활용됐다는 판단에서다.
◇ 우크라戰, AI 발전 맞물려 가짜뉴스 폭발…서방, 러시아발 허위 정보 경계령
특정 진영의 지지자들이 국제사회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고자 가짜뉴스를 적극 활용하는 현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년 2월 초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 러시아가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가짜 비디오를 만들어 유포할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실제 러시아 매체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돈바스 지역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인종 청소에 나섰다"는 등 진위를 알 수 없는 출처 불명의 보도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몇주 뒤인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하며 결국 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이같은 여론전 양상은 더욱 극심해졌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배신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는 소식까지 퍼졌고, 이에 페이스북·트위터·구글은 적극적으로 가짜뉴스 차단에 나섰다.
이후 여론 조작 시도를 위해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 계정 다수가 폐쇄되기도 했다.
허위 정보가 소음처럼 인터넷 공간을 뒤덮으며 진실의 존재를 위협하기도 했다.
작년 3월 AP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산부인과 병원과 대피하는 산모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도했는데, 러시아는 이것이 가짜라고 주장했다.
이에 AP는 임산부의 존재를 다시 확인했고, 이들이 이 여성이 나중에 아이를 낳은 것까지 다시 보도해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서방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진 지금 다시금 긴장하고 있다.
이달 초 NY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막기 위해 음모론을 퍼뜨릴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정보기관을 동원, 친러 정치세력을 지원하는 선전전을 펼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러시아발 가짜뉴스 개연성에 각별한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 CNN 등 도용 '눈속임', 전쟁 프로파간다 활용…"신뢰할 뉴스 출처 구별돼야"
세계 각국의 언론계 사이에서도 두 번의 전쟁을 경험하며 가짜뉴스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모습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에 확산하는 일부 정보의 경우 저명한 기존 매체의 이름을 도용해 눈속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가짜뉴스를 방치할 경우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신뢰의 위기까지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얼마 전 미국 CNN 방송 기자들이 이스라엘-가자지구 국경 근처에서 로켓을 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CNN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을 꾸며내다가 적발된 장면"이라는 조작된 설명이 붙어 유포되기도 했다.
이 사례는 로이터와 AP 등 통신을 통해 허위임이 밝혀지기는 했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뉴스 통신사들의 교류 협력체인 아태뉴스통신사기구(OANA)가 지난달 튀르키예에서 개최한 이사회에서도 전쟁을 틈타 확산하는 가짜뉴스가 최대 화두였다.
"일부 정치인과 전쟁광들이 AI와 허위 정보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며 "가짜 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기관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제언 등이 나왔다.
회원사들은 가짜뉴스 발원지로 지목되는 AI를 오히려 허위 정보 감별에 활용하는 가능성을 논의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을 통해서라면 기존 기록과 데이터를 대조해 출처의 진위를 확인하고, 뉴스 보도의 정확성까지 확인함으로써 기사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영 베트남뉴스통신(VNA)은 "사이버 공간에서 주류의 정보가 유통돼야만 하며, 가짜뉴스로 인한 잘못된 정보 접근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려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등 OANA 회원사들은 이번 이사회 폐막과 함께 가짜뉴스 대응에 국제적 협력을 촉구하는 내용의 '이스탄불 선언'을 채택,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출처와 신뢰할 수 없는 뉴스 출처를 구별하고, 비판적 사고와 사실 확인의 중요성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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