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534.34

  • 33.10
  • 1.32%
코스닥

696.83

  • 19.82
  • 2.93%
1/3

달항아리로 변신한 보따리…훔볼트포럼 첫 초청전 김수자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달항아리로 변신한 보따리…훔볼트포럼 첫 초청전 김수자
유럽 최고 역사 마이센 도자기와 협업해 보따리 오브제 달항아리 제작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한해 300만명이 찾는 독일 베를린 훔볼트포럼 아시아예술박물관의 비좁은 한국전시관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연둣빛 보따리가 새로 '입주'했다.

보따리는 박물관 소장품과 동시대 예술간의 상호작용을 지향하는 훔볼트 포럼 아시아예술박물관이 개관 이후 25일(현지시간) 처음 개막한 현대 작가 초청전시회 '보따리 펼치기'의 주인공 김수자의 트레이드마크다.
한국관을 시작으로 일본관, 중국관, 중앙아시아관 등에서 14개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9일까지 계속된다.
김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등 어떤 곳을 급히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빨리 싸서 움직일 수 있는 게 보따리"라면서 "가장 크게는 이불보와 같은 삶의 프레임으로 탄생과 죽음 또 고난, 고통, 희망, 꿈을 아우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체적 매개체이자 상징적 의미가 있는 보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집, 이주, 이동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저희 가족은 항상 끊임없이 1년 반, 내지 2년마다 아버지가 전근을 가면서 한군데서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보따리를 싸고 펼치고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그게 그냥 저의 일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전시관 밖으로 한걸음 나와 한국, 중국, 일본 전시실을 잇는 전시 공간에는 거울로 된 전시대에 달항아리 5개가 놓였다. 보따리의 연역적 오브제(2023)로, 한국전시관의 확장이기도 하다.
보유유물이 적다는 이유로 일본전시관이나 중국전시관 대비 10분의 1 크기로 조성된 한국전시관은 설명과 함께 전시된 유물이 10여점에 불과할 정도로 빈약한 수준이다.
김 작가는 "한국전시관에 한국이 도자기의 나라로 소개돼 있는데 제대로 된 달항아리가 없는 것을 보고 존재감을 강화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보따리의 연역적 오브제로 달항아리를 제작해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도자기 명가 마이센 도자기와 협업해 달항아리를 구웠다. 평생 완벽한 도자기를 제작해온 마이센의 장인들은 좌우가 엇박자로 비대칭인 달항아리를 만들기 힘들어했다.
김 작가는 "깨져도 비뚤어져도 좋으니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여전히 너무 완벽하게 만들길래, 임신한 여성의 배를 껴안는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면서 "그제야 자연스러운 느낌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한 번에 통째로 구워내지 않고 위와 아랫부분 항아리를 각각 따로 만든 뒤 둘을 붙이는 특이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김 작가는 "두 개의 항아리를 만들어 서로 엎는 것인데, 항아리의 밑바닥 받침이나 입구는 만들지 않고, 작은 바늘구멍 하나만 뚫었다"면서 "구멍을 뚫을 때 블랙홀을 향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바닥에 놓인 보따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일본 전시관 앞에 전시된 중국 보살 양옆에 오방색 주크박스로 만든 작품 '호흡하다:만다라'에서 흘러나오는 작가의 숨소리와 그레고리안, 티베트 성가와 이슬람 기도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김 작가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뉴욕 브로드웨이를 걷다 주크박스가 만다라의 원형구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2010년 작품으로 제작하게 됐다"면서 "전쟁의 시대 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불교, 이슬람교,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바늘이 돼 물질성과 비물질성, 음과 양, 공간과 시간을 이어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에게는 스스로의 호흡이 방직공장의 기계 소리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주크박스 한쪽에서는 숨소리가 흘러나오게 했다.
박물관을 나와 훔볼트 포럼 남쪽 야외공간에는 현대판 보따리, 오방색 컨테이너가 놓여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컨테이너에는 김 작가가 2019년 20년간 살아온 뉴욕을 떠나며 챙긴 모든 물건이 담겨있다.

김 작가와 2년에 걸쳐 이번 전시를 기획한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금화 독립큐레이터는 "지금 같은 불안한 시대에 고향과 실향, 이주와 도착, 삶과 죽음과 같은 존재론적이고 근본적인 주제에 말을 거는 김수자 작가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작가는 명상적이고, 무속적인 방식으로 예술과 일상, 자연과 문화, 존재와 부재를 연결한다"면서 "이번 시도가 박물관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김수자 작가는 1999년 미국 뉴욕으로 삶을 터전을 옮겼다가 2019년 가족이 병고를 치르게 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김 작가는 한국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설치, 퍼포먼스, 조각,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최소한의 개입과 절제된 행위, 무위를 통해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비물질적이고 일시적인 존재가 보이게 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프랑스 파리, 뉴욕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yuls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