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개도국, 이스라엘만 감싸는 美에 "이중잣대" 비난
美, 러시아 전쟁법 위반 규탄했지만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엔 침묵
서방과 '글로벌사우스' 균열 커지면서 우크라 전쟁 협력도 힘들어져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이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가자지구를 공격한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개발도상국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공격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도 가자지구 주민에게 큰 피해를 준 이스라엘은 두둔해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를 규합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때문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대국 간 권력 다툼으로 인식해 서방의 제재 등 러시아를 고립하려는 시도에 동참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중동 분쟁에서 보여준 태도 때문에 이런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고 이들 신문은 평가했다.
리스크 평가기관 유라시아그룹의 클리퍼드 컵찬은 NYT에 "중동의 전쟁은 글로벌 사우스 핵심 국가인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와 서방 간 균열을 키울 것"이라며 "그러면 대러시아 제재 이행 등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국제 협력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민간인 피해에 상반되게 반응해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냈다고 비판한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 공격을 전쟁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규탄한 것과 달리 이스라엘에는 전쟁법 준수를 당부할 뿐 비판하지 않고 있다.
전쟁법은 제네바협약과 로마규정 등 전시에 국가들이 지켜야 하는 인도주의 의무를 규정한 국제법으로 민간인 공격은 물론이며 식량·물·전력 공급 차단 등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이미 한 행동들을 금지하고 있다.
마크 린치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잔혹한 침공에서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국제 규범과 전쟁법 준수를 촉구하고서 가자지구에서는 같은 규범을 업신여기듯 무시한 것은 일관성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이 지난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자지구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인도주의적 정전'(humanitarian pause)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홀로 반대한 뒤 비판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결의안은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국제법 준수와 민간인 보호를 촉구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결의안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두둔했지만, 이번 건은 최근 미국이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비협조를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더 부각됐다고 WP는 평가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루이스 샤르보노 유엔 담당 국장은 성명에서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가 인권과 국제법을 심각하게 여긴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에 납득시키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한 잔혹 행위에 마땅히 적용한 원칙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생명을 잔인하게 경시한 것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보리 결의안을 제출했던 브라질의 유엔 주재 대사는 "가자의 수십만 민간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면서 결의안 부결에 좌절감을 토로했다.
미국은 중동에서도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지난 2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는 서방의 이중잣대를 비난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다른 곳에서라면 민간인 시설을 공격하고 의도적으로 인구 전체에 식량, 물, 기본 필수품 보급을 차단하면 규탄받고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면서 "국제법은 선별적으로 이행하면 모든 가치를 잃는다"고 말했다.
주요 7개국(G7) 회원국의 고위급 외교관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가자지구에도 적용하지 않으면 모든 신용을 잃을 것"이라고 밝혔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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