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힘못받는 美중재외교…힘키우는 中 '두국가 방안'
美, 바이든 이스라엘 방문 성과 못거둬…中-러, '美 때리고 팔 편들며' 아랍국에 러브콜
美, 지상전 대안 등 중재외교 막판 진력?…중-러는 '美 중동 패권 허물기' 연대 더 강화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간 장기전 가능성이 우려되는 가운데 중재에 나선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중재 외교 신경전도 고조되고 있다.
확전 차단에 주력하면서도 이스라엘 지지를 명확히 한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연대한 중국은 팔레스타인 독립을 바탕에 둔 '두국가 방안'(兩國方案)을 내걸고 친(親) 팔레스타인 정서를 가진 아랍권 국가들 지지를 얻는 데 매진 중이다.
미국의 '중동 패권 수성'이냐, 중·러의 '패권 허물기냐'의 싸움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 큰 성과없는 바이든의 이스라엘 방문…美, 그래도 지상전 대안 논의 중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18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 방문은 국제사회가 주목했던 초미의 관심사였으나, 1박 2일의 중재 외교 결과는 초라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에 이은 이스라엘의 지속적이면서 강한 반격, 그리고 하마스의 항전으로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으로, 해결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결과는 사뭇 기대 이하였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도착 전 '비무장 완충지대' 마련이라는 출구 전략이 설득력 있게 제기돼 관심을 끌었다. 미국 요구를 받아들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비무장 완충지대라는 자국민 보호장치를 설치함으로써 전쟁 끝내기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기대였다.
엘리 코헌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18일 "전쟁이 끝나면 가자지구에 하마스가 더는 없을 뿐 아니라, 가자지구 규모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 바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거부로 물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요르단강 서안이나 동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가자지구에도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려는 유대 민족주의 극우파가 극렬히 반대하는 비무장 완충지대 설립 방안을 네타냐후 총리가 나서서 반대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아직까진 미루는 게 미국의 중재 외교 작동 효과라는 지적도 있다. 이참에 미국이 이스라엘의 지상전 돌입을 차단할 대안을 고심 중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 후 귀국 항공편에서 "우리는 그것(지상 공격)과 어떤 대안이 있는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 데서도 그런 기류가 읽혔다.
앞서 이스라엘군 대변인 리처드 헥트 중령이 17일 취재진에 "우리는 전쟁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지상 공격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하마스의 7일 기습 공격 직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밝힌 "하마스를 궤멸하겠다"는 보복 선언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로 보인다. 가자지구 주변에 이스라엘 탱크가 집중적으로 배치된 점도 지상전 돌입을 위한 초읽기 상태에 들어간 상태라는 걸 잘 보여준다.
◇ 中, 美 때리기·팔레스타인 편들기로 아랍권에 '구애'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 쓴소리를 날렸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재 외교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강대국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견지하고, 냉정함과 자제력을 유지하면서 앞장서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이스라엘만 싸고돌면서 팔레스타인을 경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마오 대변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인 브라질이 제출한 가자지구로의 인도주의적 구호 접근 허용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전날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된 데 대한 공격도 곁들였다.
'이스라엘 자위권' 언급이 빠진 걸 문제 삼아 부결시킨 미국은 중재 외교 자격이 없다는 논리였다.
중재 외교는 이스라엘 지지가 아닌 휴전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우선시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만드는 두 국가 방안을 위한 평화 회담 개최가 필요하다는 게 중국 주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거들었다. 전날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참석차 방중한 무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빠른 휴전이 급선무"라며 두 국가 방안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이 근본적인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변언론인 영어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미국은 공정하고 책임감 있는 중재자가 되지 못한다고 공격했다.
류웨이둥 중국사회과학원 미·중 관계 연구원은 "미국은 이스라엘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것은 주로 이란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저지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중동지역의 갈등 유발로 이어지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대목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러시아와 중국이 이스라엘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친(親) 팔레스타인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는 점이다.
일대일로 정상 포럼 참석차 방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18일 시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면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러 양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과 대립의 근본 원인은 팔레스타인이 건국할 권리가 오랜 기간 방치되고 무시당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과 대립 기조를 분명히 한다. 아랍권 지지를 겨냥한 행보다.
◇ 中·러 약진에 위협받는 美 중동 패권…중재 외교 성과가 관건
사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미 대통령으로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재 외교 성과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뜩이나 버거운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선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중재 외교를 통해 중동 내 미국의 위상을 되찾아와야 하는 처지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내각이 '강경 보복' 의지를 좀처럼 꺾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의 대미 공세도 만만치 않아서다.
미국은 지난 3월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중재해 외교관계를 복원시켜 중동 해결사로 등장한 중국을 의식해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화해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나, 이번 전쟁으로 어려움에 부닥쳤다.
이스라엘이 지난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 '온건한' 아랍권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약'에 서명한 바탕 위에 사우디와도 외교관계를 맺도록 주선해왔으나 이번 전쟁 발발 직후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18일(현지시간) 미 의회 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CNBC 방송이 이달 11~15일 미국의 성인 1천1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의 전반적인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37%를 기록했다.
특히 응답자의 31%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지지했으며 60%는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이번 조사 이후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의 18일 이스라엘 방문이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지지율에 추가적인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도 이스라엘 사태 확전 억제를 위한 대 중동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더더욱 '팔레스타인 편들기' 전략으로 미국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자이쥔 중동문제 특사가 전날 중동을 찾아 처음 방문한 국가가 카타르이고, 그곳에서 미하일 보그다노프 러시아 외무차관을 만나 "중국과 러시아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일치된 입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이들 국가의 중재 외교의 성과가 중동 패권의 향배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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