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아파트 분양계약서 불공정 무더기 적발…"소비자 불리"
소비자원, 136개 계약서 점검 결과 경미한 계약 변경 때 71.3% 통지의무 누락
계약서 둘 중 하나는 계약 해지 어려워…인지세 전액 떠넘기기도
"계약서 꼼꼼하게 살펴봐야…표준계약서 사용 장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부동산신탁회사의 아파트 분양계약서 절반 이상이 내부 구조 위치와 같이 경미한 사항을 변경할 때 통지 의무를 명시하지 않거나 계약 해지를 어렵게 하는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원은 작년에 국내 12개 부동산신탁사가 사업 주체로 전국에 공급한 아파트 분양계약서 136개를 아파트 표준계약서와 비교 조사한 결과를 5일 발표했다.
국내 부동산신탁사는 KB부동산, 교보자산, 대신자산, 대한토지, 무궁화, 신영부동산, 아시아, 우리자산, 코람코자산, 코리아, 하나자산, 한국자산, 한국토지, 한국투자부동산 등 14개이나 이번 조사에는 12개 업체만 자료를 제출했다.
조사 결과 부동산신탁사의 97개(71.3%) 분양계약서에는 세대 내부 구조와 마감재 등 경미한 사항의 설계·시공 관련 변경 통지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고, 48개의 계약서는 소비자의 이의제기조차 금지했다.
표준계약서에는 경미한 사항의 변경은 6개월 이하의 기간마다 그 내용을 모아 통보하도록 규정한다.
주택법상 '경미한 사항'은 가구당 공급면적을 변경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부 구조의 위치나 면적, 내·외장 재료 등을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실제 피해자 A씨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방문 및 카탈로그를 통해 지하 공간에 2개의 창호를 설치하는 것으로 알고 계약했지만, 입주 점검 시 지하공간에 창호가 1개 밖에 없는 것을 보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사업자는 계약서를 통해 '경미한 사항의 변경에 대한 동의를 사전에 받은 것'이라며 손해배상을 거부했다.
또, 소비자원이 조사한 신탁사의 분양계약서 가운데 71개(52.2%)는 '사업자가 계약 이행에 착수한 이후'에는 계약 해제 또는 해지를 어렵게 하고, 사업자 귀책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 관련 조항을 넣지 않았다.
표준계약서는 중도금을 1회 납부하기 전까지는 소비자 사정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가 가능하며, 사업자 귀책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 사유도 다양하게 규정한다.
아울러, 조사 대상인 136개 계약서 모두 신탁사에 과도한 면책 조항을 담았다.
이들 계약서는 별도 조항 및 특약을 통해 '신탁계약 종료·해제 시 부동산신탁사의 소비자에 대한 모든 권리·의무를 시행위탁자에게 면책적으로 포괄 승계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표준계약서에는 없는 조항으로, 신탁사가 불법행위나 중대 과실을 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신탁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부동산 소유권 이전 시 인지세법에 따라 공동 부담하는 15만∼35만원의 인지세를 소비자에게 전액 떠넘기는 조항도 다수 계약서에서 적발됐다.
신탁사가 작성한 계약서 중 102개(75.0%)는 소비자가 인지세 전액을 부담하도록 했다.
사업 주체와 소비자가 인지세를 50%씩 부담토록 한 계약서는 6개에 불과했다.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소비자원에 접수된 신탁사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103건이다.
이 가운데 주요 사항에 대한 설명·고지가 미흡하거나 계약 당시 설명과 실제 계약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불완전 계약'이 54건(52.4%)으로 가장 많고, '사실과 다른 표시·광고' 15건(14.6%), 입주 지연 등 '계약이행 지연' 14건(13.6%), '청약 철회 거부?지연' 13건(12.6%) 순이다.
소비자원은 최근 원활한 주택 공급을 위해 정비사업 시행?운영과 관련한 신탁사 특례가 도입됨에 따라 관련 계약이 늘 것으로 보고 이번 점검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주택 분양계약 체결 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이 사업자의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표준계약서 사용을 장려한다"며 "소비자도 계약서에 명시된 조건을 꼼꼼히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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