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 그리스 10여 년만의 변신…EU 내 성장 괄목
관광객·투자자 몰려…성장 빠르고 국가신용도도 상향
재선 미초타키스 총리 변화 선도…부채비율 여전히 높아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그리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 부도 사태를 겪었다. 한동안 유럽 부채 위기의 진앙이 됐으며, 유로존을 붕괴 위기로까지 몰고 갔다.
경제는 4분의 1이나 쪼그라들었고, 가계 소득과 연금이 삭감됐다.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수십만 개의 기업이 무너졌고, 2013년에는 3명 중 1명꼴로 실업 상태였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리스는 유럽에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로 변신했다.
변화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성장률은 유럽연합(EU) 평균을 크게 웃돌고 덩달아 올해 증시도 크게 올랐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주요 산업인 관광 부문이 활기를 찾고, 투자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 활기 되찾은 경제…떠났던 외국인 투자자 돌아와
그리스에는 10여 년 전 디폴트 이후 떠났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밀려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아테네 동쪽에 10억 유로(1조4천억원)를 투자하는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도 6억5천만 유로(9천200억원) 상당의 연구 허브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관련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또한 시스코와 JP모건,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등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는 향후 수년 동안 수십억 유로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여름 잇단 산불에도 1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왔고, 이로 인한 추정 매출만 210억 유로(30조원) 이상이다.
호텔과 에어비앤비 수요 급증과 함께 최소 50만 유로(7억원)의 부동산 구입 시 EU 거주 자격 부여 프로그램 등으로 곳곳에는 건설이 한창이다.
주식과 채권에도 예년에 비해 배 가까운 외국인 자금이 밀려들고 있다.
덩달아 그리스 증시의 ATG지수는 올해 초에 비해 약 30% 올랐고, 이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상승률이다.
EU는 향후 4~6년간 총 550억 유로(약 78조원)의 재정지원을 통해 그리스의 회복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달 26일 이 같은 EU의 지원이 자국 공공투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경제 회복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제 지표로 드러난 활력…국가신용도도 회복세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그리스의 경제 회복을 인정하면서 국가신용도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승인을 받은 국제 신용평가사 DBRS는 지난달 10일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인 'BB'에서 투자 적격인 'BBB'로 올렸다.
재정 및 부채 상황에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다며 그리스 정부의 노력을 후하게 평가했다.
이어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달 15일 그리스의 경제, 재정, 은행 시스템의 상당한 구조적 변화를 이유로 신용등급을 두 단계 상향했다. 하지만 아직 투자 등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S&P와 피치는 오는 20일과 12월 1일에 각각 평가가 예정돼 있다.
경제성장률은 최근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1년 8.4%, 지난해 5.9%를 기록하면서 EU 평균인 각각 5.4%와 3.5%를 크게 웃돌았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그리스 경제가 관광업의 도움으로 올해 2.4% 성장할 것이라며, 이는 유로존의 두 배 이상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20년 206%에서 최근 166%로 떨어졌다.
2015년 27.5%에 달했던 실업률은 현재 11%로 여전히 높지만 지난 10년 사이 최저 수준이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2012년 40%를 넘어섰다가 현재 4%대로 떨어졌다.
2019년 중반부터 그리스 자산을 늘려온 모건스탠리의 신흥시장 공동책임자 마샬 스토커는 지난 7월 "그리스는 향후 12개월 동안 커버스토리가 될 것"이라며 그리스는 EU를 거의 붕괴시킬 뻔한 나라였다고 상기시켰다.
◇ 변화 주역 미초타키스 총리…시장친화적 정책 추구
그리스의 변화에는 보수파 정치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5) 총리가 있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과학 학사·경영학 석사(MBA)를 딴 뒤 국제 컨설팅 회사인 매켄지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9년 경제 부흥을 내걸고 총리직에 취임해서는 시장 친화적인 경제정책을 밀어붙였다. 관료적 형식주의의 타파에도 적극 나섰다.
지속적인 감세 정책을 통해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예정보다 빨리 부채를 상환하면서 지난해 3월에는 마침내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바탕으로 지난 6월 재선에도 무난히 성공했다.
재선 성공 후 미초타키스 총리는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 국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큰 변화를 실현하겠다"며 국가 신용등급 회복, 관광산업 수익 확대, EU 평균 수준으로 임금 인상 등을 약속했다.
월 최저임금의 경우 지난 4월 780유로(111만원)로 올린 데 이어 4년 임기 내 950유로(135만원)로 인상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10년에는 740유로(106만원)였다.
공공부문 급여도 국가 채무 상환을 위해 20% 삭감된 이후 처음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 아직 갈 길 멀어…부채비율 높고 긴축 고통 여전
그리스는 여전히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엄청난 부채 더미는 줄어들었지만,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1인당 GDP는 유로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은행들은 여전히 유럽 평균보다 더 많은 부실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 부도에 따른 긴축의 아픔이 여전히 생생한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 고통은 악화했다.
노동자층 동네에서 사는 미트로피나키스는 뉴욕타임스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높은 급여를 받는다"며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징후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서 "다른 많은 사람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특히 은퇴한 많은 이웃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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