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에너지기업 소극적 투자로 생산량 줄어 고유가 부채질"
유가 상승에도 석유시추장비 오히려 감소…주주 배당 우선시
WSJ "OPEC+ 감산, 서방기업 대응 못할 것이란 데 베팅한 것"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여파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서방 에너지 기업의 소극적인 시설투자가 고유가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달 22일 현재 미국에서 가동 중인 석유 시추장비는 한주 전보다 11개 감소했으며, 1년 전과 비교해서는 134개 줄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데다 향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석유 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서방 에너지 기업들이 고유가에도 생산 확대에 소극적인 이유는 증산을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보다 주주환원 정책을 최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미국 상장 에너지 기업들은 영업현금흐름(OCF)의 90%에 달했던 재투자 비중을 최근 절반가량으로 줄였다.
실제로 엑손모빌, 셰브런 등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과거 저유가 시기 소홀했던 주주환원 정책을 보상하기 위해 배당 확대 압박을 지속해서 받고 있다.
셸, BP 등 유럽계 메이저 에너지 기업의 경우 생산 확대 대응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셰일오일 유전이 생산량을 상대적으로 신속히 늘릴 수 있지만 전통적인 유전 의존도가 큰 유럽계 에너지 기업은 생산량을 단기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탓이다.
특히 해저 광구의 원유를 시추하는 해양 프로젝트의 경우 생산 개시까지 수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 유가 변동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서방 에너지 기업이 시설 투자를 머뭇거리는 이런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분위기다.
사우디의 경우 네옴 프로젝트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추진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WSJ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최근 자발적 감산을 연장하면서 서방 에너지 기업들이 과거와는 달리 고유가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란 데 베팅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서방 에너지 기업은 고액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 투자자가 직면한 위험은 분명해지고 있다"며 "국익을 우선시하는 (OPEC+의) 에너지 기업들이 점점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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