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부모님 졸라서 왔어요"…야간 개장 아르헨 한국문화원 인기몰이
아르헨 시민 5천여명, 밤새워 한국문화 만끽…디지털 한복 입기 큰 호응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자정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23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택시 기사 아드리안(50)은 "주말에는 늘 사람들이 붐비지만, 오늘은 '박물관의 밤' 행사로 더 많이 나온 것 같다"라면서 "버스와 지하철도 오늘은 무료인 데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주중엔 박물관에 갈 시간이 없으니 이런 기회에 나들이 온 게 아니겠냐?"며 웃었다.
그는 시내 미술관 앞에 500m 정도의 줄이 있다는 정보도 알려줬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2004년부터 '박물관의 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평일에 문화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시내 주요 문화공간을 주말 야간에 개장하는 이 행사는 큰 호응을 얻어 약 100만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는 큰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도 지난 2009년부터 꾸준히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찾는 인기 행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원의 송모 실무관은 "이미 오후 9시에 참석인원이 2천명을 넘었고 문화원 정문 앞에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긴 줄이 형성됐었다"고 귀띔해줬다.
문화원에 들어서자, 정문 앞에 설치된 한복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커플은 일부러 여자는 남자 한복을, 남자는 여자 한복 입간판에 서서 촬영을 해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줄 서 있던 시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한국문화원은 올해도 우리의 대표 명절 한가위를 기념하기 위해서 전통 공예품인 청사초롱으로 문화원 내외부를 단장하고 시민들을 맞이했으며, '한복'을 메인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우선 한복 포토존을 문화원 앞 정원에 설치하고, 문화 체험으로는 한복 종이접기, 자개 전통 머리 장식 만들기 등을 경험하도록 마련했으며, 뒷마당 야외공연장에서는 강강술래, 전통 놀이 투호, 제기차기, 딱지치기 등을 준비했다.
디지털 한복 입기 체험은 최첨단 테크놀리지를 사용하여 대형 스크린 앞에서 참여자가 원하는 한복을 고르고 스크린에 나온 자기 모습을 확인한 후 사진을 찍어 즉시 개인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돼 있어서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참가자들은 스크린을 터치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화려한 왕과 왕비의 복장보다도 일반 한복을 고르는 시민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시민들은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길게 줄을 서서 침착하게 기다렸다.
야외공연장에선 K-팝 공연과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 이벤트가 이어졌다.
현지인 K-팝 커버 그룹이 이선희의 '인연'과 안예은의 '상사화'를 공연해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한 관계자는 이번 행사의 주제가 한복이어서 국악풍의 K-팝을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강강술래, 전통 놀이 투호, 제기차기, 딱지치기 등 계획한 행사가 끝난 다음에도 시민들은 야외공연장을 떠나기 아쉬운 듯 K-팝에 맞춰 신나게 춤추기 시작했다.
문화원 내부는 마감을 앞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체험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상설전시장에서 한식에 사용하는 젓가락으로 콩집기에 도전하는 사람들, 대형 모니터를 통해서 K-팝 스타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사람들 등 이미 자정에 가까워 계획된 많은 체험행사가 끝난 시점이지만, 많은 시민이 상설전시장에 남아 한식과 한옥에 대해서 배우고 특별기획된 백희나 아동문학 원화전 등을 구경했다.
디지털 한복 입기 체험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아나이(14)는 "K-문화 팬이어서 부모님 졸라서 왔어요"라면서 지방에 살지만,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트와이스와 스트레이 키즈의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좋아하는 한국 미니시리즈가 뭐냐고 묻자 '갯마을 차차차', '사내 연애', '사랑의 불시착' 등 랩 하듯이 여러 작품을 쉬지 않고 읊었다.
'한국문화를 잘 모른다'고 했던 아나이의 부모 세르히오(54)와 미리암(37)은 옆에서 "우변호사는 우리랑 같이 봤잖아"라며 딸이 빠뜨린 한국 드라마를 추가해주기도 했다.
딸의 간청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세르히오는 "총기 박물관에 가고 싶었는데 한국문화원으로 왔다"면서 "딸이 원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딸바보' 아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곱게 한복을 입고 시민들을 맞이하며 각 장소에서 친절하게 안내한 현지인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한국문화원의 자원봉사 단체인 알마한('한 영혼'이라는 뜻)의 회원들로 이번 행사를 위해 27명의 회원 중 18명이 무보수로 행사를 도왔다.
이 중 한 명인 비비아나(30)는 17세 때 동방신기로 시작한 K-팝에 대한 사랑이 현재는 에이티즈로 옮겨왔다면서 "한국문화를 통해 어려서부터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존중과 가치에 대해 배웠다"며 한국어 쓰기와 말하기를 독학했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 밀라그로스(25)는 "너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가 많아서 단 한 개는 고를 수 없다"면서 최근 본 건 '마크스걸'이라고 답한 뒤 자신은 BTS를 사랑하는 '아미'(BTS 팬 그룹)라고 밝혔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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