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인도 꿈꾸는 모디 성향 반영…영국·파키스탄서도 시크교도 의문사 줄이어"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캐나다에서 발생한 시크교도 암살 사건으로 캐나다와 인도가 외교 마찰을 빚는 가운데, 인도 정부의 다소 위험해 보이는 해외 보안·첩보 작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6월 18일 캐나다 국적의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단체 지도자 하디프 싱 니자르가 밴쿠버 외곽 시크교 사원 주차장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해 캐나다는 인도 정부가 그 배후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목했다.
암살된 니자르는 인도 북부 펀자브 지역을 인도에서 분리해 시크교 국가 '칼리스탄'을 세워야 한다는 분리주의 운동단체의 유명한 회원이었다. 인도 정부는 2020년 니자르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인도 정부는 이번 사건에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캐나다가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들은 캐나다 정부가 이미 이번 사건에 개입한 인도 정부 당국자와 주 캐나다 대사관 소속 외교관 등의 대화 내용도 확보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실린 수샨트 싱 인도 정책연구소(CPR) 선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시크교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힌두 민족주의 성향의 집권 인도국민당(BJP)의 불안이 자리한다.
우선 모디 총리의 최측근으로 정보기관의 해외 공작을 총괄하는 아지트 도발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시크교 분리주의 세력에 강경 대응한 정보 수장 출신이다.
시크교 분리주의 단체들은 1980년대 이후 위세가 꺾였으나 인도 보안 당국은 여전히 이들의 재부상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크교도들은 인도의 앙숙 파키스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인도 정부를 자극하고 있다.
2020년 인도 전역에서 수개월간 이어지며 정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번졌던 농민 시위 때 인도국민당 지도부는 시위대가 친 칼리스탄 활동가들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니자르 암살 사건으로 우려되는 것은 니자르 외에도 올해 해외에서 활동 중인 이름난 시크교 분리주의 활동가 3명이 의문사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아브타르 싱 칸다가, 파키스탄에서는 파라미지트 싱 판자르와 하르미트 싱이 각각 사망했는데, 시크교 분리주의 단체들은 인도 보안기관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다.
아지트 도발이 지휘하는 인도 안보당국은 앞서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군주의 딸인 셰이카 라티파가 인도로 도피해 있던 2018년 그를 납치해 가족에게 강제로 돌려보냈다는 의혹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형제 동맹국인 캐나다에서 이번 사태처럼 떠들썩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다만, 전조 증상은 그간 계속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와 캐나다는 각각 모디·쥐스탱 트뤼도 정부 들어 부쩍 관계가 악화했는데, 인도는 캐나다가 시크교 분리주의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캐나다는 그런 인도에 대해 자국 내정에 간섭하려 한다고 맞섰다.
인도가 캐나다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캐나다에 시크교도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인도와 캐나다는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역사적 유대가 있고, 캐나다에는 140만명이라는 인도계 최대 동포사회가 형성돼 있다.
시크교도의 인구 구성 비율은 현재 인도(1.7%)보다 캐나다(2.1%)에서 더 높은 정도다.
캐나다 시크교도들은 캐나다 주요 정당 지도부에도 진출해 있고,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2018년 캐나다 차관 회의 자료에서는 인도계 캐나다인들이 외국 정부의 자국 내 의제로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는 집단 중 하나로 꼽혔다.
모디 총리로선 이번 논란이 그에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싱 선임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인도에서 국내적으론 모디 총리에게 민족주의 서사를 더해 줌으로써 '강한 지도자'로 입지를 강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어려운 국가안보 의제를 내세워 온 모디 총리에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기된 이번 의혹이 오히려 '스트롱맨' 이미지를 높여 지지층을 결집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은 이전 정권들이 인도를 '말랑한 국가'로 만들었다면서, 이스라엘처럼 해외에서 과감한 활동을 벌이며 강하게 나가지 않는 점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가운데 이런 상황은 모디 총리에게 외교적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싱 선임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문제가 모디 정부를 '어둠의 길'로 빠뜨릴 것이라면서 "모디에게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파키스탄 강경파 군부와 같은 급으로 들어갈 만한 여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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