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르포] 밤에도 이어진 프리고진 추모…"기억하겠다"
바그너용병 출신이 추모 장소 마련…무관심·부정적 시민들도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29일(현지시간)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러시아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 인근의 한 교회 앞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지난 23일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임시 추모 장소가 마련된 곳이다.
추모 장소는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이인자 드미트리 우트킨 등 이번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과 바그너그룹을 상징하는 해골 모양 깃발, '전사가 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 양초 등으로 장식돼 있었다.
또 추모객들이 두고 간 붉은 카네이션들이 가득 쌓여 있어 수 m 거리에서도 향기가 진동했다.
일부러 꽃을 들고 이 장소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다가 추모 장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 전용기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항공기를 타고 모스크바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중 추락 사고로 숨졌다.
옛 소련을 지칭하는 'СССР'가 적힌 운동복을 입은 한 남성은 "바그너그룹 수장과 여러 명이 비행기 사고로 추락해 숨졌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더니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근처 벤치에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떴다.
추모 장소에 헌화한 한 여성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이 여성과 동행한 남성은 "우리는 그가 '영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는 러시아를 위해 싸운 전사였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을 이끌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에 참여해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데 기여하는 등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군부와 갈등을 겪다가 지난 6월 부하들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하루 만에 끝났다.
바그너그룹 휘장이 그려진 깃발을 어깨에 두른 '비탈리'라는 남성은 추락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 24일 직접 이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바그너 용병 출신으로, 우크라이나에 나가 싸우기도 했다는 그는 프리고진에 대해 "그는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비탈리는 사진 촬영에 응하기는 했지만 마스크로 얼굴 일부를 가렸다.
늘 이 공간을 지키고 있는 그를 위해 햄버거와 음료를 사다 주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러시아 택시 기사는 기자에게 "추모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며 무관심하다는 반응을 보이더니 엉뚱한 장소에 내려주기도 했다.
프리고진 사망 다음 날 만난 러시아인 2명은 프리고진이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모스크바 시민은 "외곽으로 나갈수록 프리고진에 대한 인기가 높고 영웅시되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그가 상당한 권력과 재력을 가졌다는 배경을 아는 사람은 그가 애국자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의 장례식은 이날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로홉스코예 묘지에서 가족과 친구 등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열렸다.
현지 언론 매체들은 프리고진의 사망 소식과 마찬가지로 그의 장례식에 관한 기사 역시 짤막하게 다루는 데 그쳤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로스토프,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프리고진에 대한 추모 장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abb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